기사 메일전송
'6.10 민주항쟁 민주화 완성아닌 시발점'
  • 편집국
  • 등록 2022-06-09 08:34:44

기사수정
  • 6.10 민주항쟁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민생당 중앙당 대변인 박춘림 


[조대형대기자]

“1926년 6월 10일은 조선 마지막 임금인 순종의 장례일이자 6·10 만세운동이 일어난 날이다. 또한,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시작되었던 날이다. 3·1 운동이 고종의 장례식에 맞추어 일어난 것이라면, 6·10 만세운동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장례식에 맞추어 전개되었다.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6월 10일에 예정대로 서울 거리로 뛰쳐나왔다. 61년이라는 역사가 흘러 1987년 6월 10일 정부의 무자비한 독재와 탄압을 참지 못한 학생과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다. 이것이 바로 ‘6월 민주항쟁’이다. 그래서 6월 10일은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잇는 뜻 깊은 날이다. 1926년과 1987년의 6월 10일 그날의 사건을 재조명하여 소중한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그 의미를 새겨봤으면 한다.”  민생당 박춘림대변인의 일갈이다. 

 

박춘림 민생당 대변인은 이날 6.10 민주화항쟁을 기리는 성명을 발표하는 취지와 관련하여, “35년 전 1987년 6월,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를 중심으로 전국 38개 시․군에서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다.“고 회고하면서, 

”6월민주항쟁은 누가 누구에게 먹고 먹히는, 이기고 지는, 죽고 죽이는 그런 운동이 아니었습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해원상생하여 보다 완전한 민주주의로 가자는 운동이었다. “고 정의했다.


특히 박춘림 민생당 대변인은, 6월 민주항쟁의 성격과 역사적 의미는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6월민주항쟁은 우리 현대사에서 민주화의 분수령이자 대중투쟁의 전환점이었습니다.전국적으로 연인원 4백만~5백만 대중이 군사독재에 항거하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투쟁의 대열에 함께했다. 우리의 민주화운동은 4.19를 기점으로 부마항쟁과 광주항쟁을 거치면서 6월항쟁에 이르러 비로소 범국민운동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 87년의 6월민주항쟁을 가능하게 했던 배경은 무엇인가 .무엇이 시민들을 그토록 분노케하고 거리로 나오게 했는가.

 

“6월항쟁은 그해 1월14일 발생한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박군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도덕성과 정통성이 결여된 당시 5공화국 전두환 정권의 폭압정치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극에 이르게된 것이다.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해방이후 고착화된 분단체제의 지속과 독재체제의 재생산과정에서 찾을수 있을 것이다.”

 


-- 6월항쟁의 전개과정에 대해 개괄하여 정리해 달라

 

“1월14일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이 발생한 이후 이에대한 규탄에서 비롯된 87년의 민주화투쟁은 2.7추도회와 49재에 맞춘 3.3평화대행진으로 이어졌고 전두환정권은 이에맞서 특별담화문 형식을 통해 4.3호헌조치를 발표했다.이에 지식인들의 반대성명이 잇따랐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5월1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거행된 광주사태 7주기 추모미사에서 박종철군 고문치사 은폐조작을 폭로하기에 이른다.

5월27일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발족되고 6.10대회를 시작으로,6.18일 최루탄 추방의날 시위,6.26평화대행진으로 거리 투쟁이 이어져 마침내 6.29라는 대국민항복이 발표되고 이후 7.8월의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진 것이다.”

 

-- 6월항쟁은 이른바 6.29 선언으로 일단락 됐다.당시에도 지금에도 6월항쟁의 성과물로서 6.29선언에 대해 여전히 엇갈리는 평가들이 존재하고 있다.6월항쟁은 어떤 성과물을 남겼다고 생각하는가.

 

“국민들은 6월항쟁을 통해 당시 정권으로 부터 6.29라는 대국민 항복선언을 받아냈으나 그해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루는데 실패함으로써 민주화의 시계바늘을 원점으로 돌려놓고 말았다.그러나 6.29선언을 기점으로 각계 각층의 권익투쟁이 촉발돼 7.8월 노동자 투쟁으로 이어져 이 기간 3천여개의 노조가 설립되고 민주노조 설립을 통해 노동운동이 뿌리내리는 계기를 제공했다. 또한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등의 전선조직과 시민사회단체들을 탄생시켰다는 점은 나름대로의 성과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수십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가 6월항쟁속에서 배워야할 역사적인 교훈은 무엇인가.

 

“6월항쟁은 민주화의 진전을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각성과 주체적인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에게 일깨워주었다.한 나라의 국민은 그 나라 국민수준 만큼의 민주화된 정부를 갖는다는 명제를 시민사회 스스로가 되새겨야 할 문제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 6월항쟁정신의 계승발전을 위한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87년 6월항쟁이 그 자체로 민주화의 완성 을 의미하지 않았듯이 앞으로 6월항쟁정신속에 녹아 있는 민주화 노력과 성과물을 올바르게 추스리고 새로운 시대의 현실에 맞춰 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6월항쟁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바로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박춘림 민생당 대변인의 6.10 항쟁에 대한 성명발표 전문이다








광고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포토뉴스더보기
확대이미지 영역
  •  기사 이미지 [알림]총선승리를 위한 애국단체연합대회
  •  기사 이미지 어멋! 이건 빨리 가야햇!!!! 선착순이래!!
  •  기사 이미지 송파(갑) 국회위원 석동현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 이모저모
문화체육관광부
정책공감
최신뉴스더보기
우이신설문화예술철도
인기 콘텐츠더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