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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녹슬어 버린 한국전쟁의 아픈 기억들
  • 편집국
  • 등록 2022-06-25 07: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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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패좌파들의 두목 문재인의 한국전쟁 발발에 대한 모호성


[조대형대기자] 


한국 현대사를 말하면서 6.25 전난으로 통칭되는 한국 전쟁을 말하지 않고서는 역사의 궤적을 쌓아 올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가장 치열했던 전적지와 전후 세대의 모습, 전쟁의 아픔과 같은 심리적 화두들이 현재에 이르러, 그 역사적 진실들이 왜곡되거나 작의되어 국민들의 언저리에 파편화 되고 있다. 이른바 한국전쟁을 누가 발발시켰느냐 하는게 쟁점의 논거인데, 엄연한 사실로서의 남침을 이 땅의 진보주의자들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북괴 괴수들의 하수인과 다름 아닌 친.종북 세력들은 북침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그들의 두목인 문재인도 모호하게 처신하고 있는 것에 더하여 한국의 북침론에 무개를 더하고 있다. 이는 눈에 보이는 남북간의 국경으로서의 경계가 아닌 한국의 현대사를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서의 6.25 한국전쟁이 만들어낸 과거와 현재, 아픔과 아름다움, 분단과 통일, 고립과 화합, 욕망과 금단, 한반도와 세계의 경계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임진각, 대성동 선전마을, 각지에 세워진 전적비, 전쟁기념관 등 구경거리가 되어버린 전쟁의 파편들을 모아 한국전쟁 그 비극의 당사자가 아닌 관찰자이며 방관자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저간의 사정을 옮겨보면 이렇다. 이 글을 적시하는 본 필자는 한국전쟁 이후 세대다. 그러나 나의 가족사을 한국전쟁으로 당시로 거슬러 올려 놓으면 마치 내 자신이 그 당시를 살아낸 사람으로 착각되어 혼돈할 때가 있다. 소위 한국내에 주둔되어 있었던 지역 빨갱이들의 지목에 따라 무참하게 난도질 당할 수 밖에 없는 대상에 여지없이 지목될 수 밖에 없는, 즉 공산주의자들이 재단한 것으로 보면 브르주아(토지주)였고, 나의 백부(한국전쟁 당시 육군소령/ 훗날 법무부장관 역임)와 나의 아버지(육군사관학교 4년제 수석입학 했지만, 한국전쟁의 발발로 곧바로 전선에 투입된 불운의 생도2기/ 훗날 정무차관,11.12대 국회의원 역임. 장창국 저술의 육사졸업생들 참조)가 군인인 까닭에 수난의 정점에 있을 수 밖에 없었고, 피난을 가지 못했던 우리 친/인척들은 한국전쟁의 노정된 비극의 주인공, 이른바 저들 빨갱이들에게 매맞아 죽거나 총살을 당했다.

 

당시의 상황을 나에게 전해 준 나의 어머지는 이미 고인이 되어 저 한편의 저승에 계시지만. 지금도 기억으로 남아 생생한 것은, “진흙이 엉겨 붙은 우리 할머니의 머리카락이 피처럼 붉은 색이었다”고 말한 대목에선, 전쟁의 와중에서나 있을 법한 강렬한 찰나의 장면으로 뇌리에 새겨져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돼 버린다. 이처럼 전쟁은 숱한 죽음을 목격해야 하는 참혹한 현실이다. 굳이 누군가를 죽이지 않아도, 내 곁의 동료들이나 가족들을 떠나보내는 트라우마는 우리들의 평생을 지배하고 가두어 놓고 있다.

 

 아마도 한국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대개의 사람들은 ‘손가락 총’이라는 말을 대단히 생소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북괴에 북역한 사람들 사이에선 무시무시한 용어였다. 

즉 특정 사람을 지목하여 손가락질하면 손가락질당한 사람을 총살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행위를 ‘손가락 총’이라 불렀다. 

 

낮에는 대한민국이, 밤에는 인민공화국이 되는 마을에서 어느 한쪽이 들어와 다른 쪽에 협력한 사람을 색출해 낼 때,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 지적을 유일한 근거로 삼아 지목된 사람을 곧 적과 내통한 사람으로 간주해 즉결 처형했으니 인간사회에서 이보다 더 무서운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따라서 ‘손가락 총’이라는 말은 이웃 간의 신뢰가 사라지고 형제가 원수가 되며, 개인적 감정에서 출발했을지도 모르는, 한 사람의 증언이 타인의 목숨까지 좌우하던 그 험악한 세월을 상징하는 용어다. 우리들은 이 손가락총 역할을 했던 사람이, 또는 후예들이 훗날 대한민국의 주도세력으로 둔갑해, 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정치적 사회주의 경제적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려 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체험하지 않는 세대에게 있어서의 한국전쟁은 그저 무용담에 불과 했다. 

러시아가 자신들의 침략적 야욕을 이루고자 우크라이나를 공격해도, 많은 사람들은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물론 몇몇 의식 있는 청년들은 촛불을 들고, '정당성 없는 전쟁'에 대해서 반대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려니 하며, TV에서 멋지게 정밀 타격하는 러시아의 무기에 감탄사만 질러 되었다.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란 별칭으로 함부로 불리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어느덧 72여년이 지났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 과거지사가 잊혀지는 면이 있다손 치더라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은 국내에서도 ‘잊으려는 전쟁’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남북통일을 위해 6·25전쟁은 잊혀져야 한다는 정치적 분위기가 현저하다. 

 

그렇지만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북통일을 지향한다 해서 민족사 내지 세계사적 전쟁을 기억에서 지울 수 있을까? 3년간의 혈전, 지금도 종전이 아닌 정전상태로 남아 있는 이 민족사적 피멍을 우리는 결코 지울 수 없을 것이다. 한국전쟁은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비극이면서 16개국의 유엔군이 참여한 20세기 대전쟁의 하나이다. 세계사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이 전쟁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잊지 않기 위해 추념하는데, 우리는 그러하지 못하다. 

 

한국전쟁은 세 가지 점에서 최초의 전쟁이다. 첫째는, 세계사에서 처음으로 공산주의의 대외팽창을 유엔의 힘으로 저지 격퇴한 전쟁이고, 둘째는, 주력을 이룬 미국군이 역사상 처음으로 백인과 흑인이 동등하게 취급된 전쟁으로, 그에 따른 독특한 심리적 사회적 특징과 문제가 드러난 전쟁이다. 셋째는, 전쟁포로를 종전처럼 당연히 고국으로 귀환하지 않고 본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선택하게 한 전쟁이다.

 

특히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군은 십만 명 이상 목숨을 잃었다. 한국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 가운데, 한국 부패좌파들이 널리 퍼트리고 있는 한국의 북침론을 잡아야만 한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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