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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봉 석종현논단 대한민국 법치국가인 것이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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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2-02-17 07: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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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치주의는 민주주의 원리와 쌍벽을 이루는 것이다

천봉 석종현논단 대한민국 법치국가인 것이 맞는가 

법치주의는 민주주의 원리와 쌍벽을 이루는 것이다

 


어느 전만해도 법과 내 삶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던게  법학자이자 법 전문가로서의 생각이었다. 특히 법을 헌법정신에 부합하게 하는 것, 인권적 가치를 담게 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법들이 결국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5년 동안 목격한 사실은 유머와 풍자, 비판과 의견이 국가와 권력을 향할 때 범죄로 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내내 귀가 따갑게 들은 말은 ‘법치주의’이다. ‘법치주의’는 얼핏 생각하면 법을 잘 지키자는 말로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국가가 국민들에게 ‘법을 잘 준수해라’, ‘안 지키면 법대로 처벌하겠다’는 의미로 사용했다.그런데 실제 ‘법치주의’란 그런 게 아니다. 법치주의란 권력자의 자의를 법으로 통제함으로써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즉 법의 구속을 받아야하는 것은 권력자이고, 국가권력을 함부로 휘두를 수 없게 법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치국가는 헌법의 근본가치를 실현하는 법질서의 통제로 이해해야하며, 헌법의 기본원칙인 기본적 인권보장을 위해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곡된 ‘법치주의’로 범죄자가 되거나 그 혐의를 받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권력은 손쉽게 법을 동원하여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법원은 권력의 손을 잡았다. 우리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법치주의 원리는 법률의 형식만을 중요시하는 ‘형식적 법치주의’ 또는 ‘법률만능주의’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과 정의를 실현하는 ‘실질적인 법치주의’이다. 법치주의는 민주주의 원리와 쌍벽을 이루며, 선출된 권력이 권력을 악용하는 것을 막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래서 법치주의 원리의 핵심적인 요소로는 기본권 보호, 법적 안정성, 권력분립 원칙, 신뢰 보호, 소급입법 금지, 입법 형성권의 절차적 정당성 준수 등을 이야기하곤 한다.

2차 대전 전까지만 해도 무절제한 국가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적 개념으로 등장했던 법치주의 원리는 비정치적이고 법 기술적인 원리로 평가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법치주의 원리를 형식적으로 파악하면, 법치주의 원리는 단순한 법률의 지배원리로 이해되거나 법치국가와 법률 국가를 동일시하게 된다. 그리고 합법성의 원리가 모든 국가 생활을 지배하는 최고의 원리로 존중되기 때문에, 입법권이 법률 제정 절차를 따르고 법률의 형식을 취하는 한 무엇이든지 제정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되고 만다.

 

하지만 현대국가의 근본적 이념으로서 법치주의 원리는 합법성만이 아닌 정당성까지 갖춘 법률에 의한 통치와 그 통치의 내용이 자유, 평등, 정의의 실현 형태가 될 것을 요구하는 실질적 법치주의 원리이다. 즉 법 제정의 목적도 중요하지만 제정 과정의 정당성과 법률 내용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시되어야 하는 이념이다. 따라서 법률 내용 성안에 관한 국민적 합의와 권력 간의 상호 견제와 균형의 메커니즘이 작용하는 절차적 과정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최근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법치주의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지적을 하곤 한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높은 지지율의 대통령과 다수 의석을 확보한 여당, 그리고 유일하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 개혁까지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현재인데 왜 그럴까. 현대 자유민주 국가에서 법치주의는 민주주의 원리와 쌍벽을 이루는 원리로서, 선출된 권력이 권력을 악용하는 것을 막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생각을 시작해 볼 필요가 있다.

 

법치주의는 선출된 권력이 선출 과정에서의 민주적 정당성을 내세워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정치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게 막는 민주주의의 순화 원리이다. 따라서 법치가 붕괴하면 민주주의는 순식간에 민주적 독재로 변질하고 마는 것이고, 실제로 우리는 역사 속에서 그러한 장면을 목도한 바 있다. 우리의 정치 현실에 켜진 빨간불을 바로 인식해야 하는 시점은 아닌지 점검이 필요하다. 정치판에 정치가 없고, 난무하는 법률안 속에는 국민을 위한 대의(代議)의 진정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자 자체가 ‘法治(법치)’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법치주의는 통치에 대한 원칙이다. 영국에서는 대헌장에서 절대 권력자인 왕의 의지도 법에 의해서 제한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법치주의의 장을 열었다. 이것은 영국에서 “누구도 법 이외의 것에 지배되지 않는다. 통치자도 법의 지배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법치주의의 일반 원리로 자리 잡았다. 즉 법치주의의 의의는 피지배자뿐 아니라 지배자도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함을 명시한 데 있다.

그러므로 단순히 법의 형식만 빌려서 통치하는 것은 법치라고 할 수 없다. 정권을 위한 법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법이어야 하고, 내용도 정의롭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정권 변동에 따라서 법률 내용이나 집행이 달라질 수 있는 불안정한 법이어서도 안된다. 따라서 입법자들은 무엇이 국민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 치열하게 논의하고 다투어야 할 의무를 져야 한다. 의회 내에서의 권력 간 견제와 균형이 중요한 이유이다.

 

그런데 우리 국회의 모습은 어떤가. 우리 국회에는 국민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지고자 하는 대의기관으로서의 의원들이 없다. 여론조사 결과가 국민의 의견을 대신하고, 의원마다 앞세우는 국민의 정체가 다르며, 특정 목적을 위한 원포인트성 입법발의와 디테일 없는 껍데기 법들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야당을 배제한 여당의 의사 전개는 야당의 무능함과 여당의 독단 그 이상이 될 수 없어서 토론과 숙의 없는, 그래서 기대할 게 없는 탄식의 장일 뿐이다.

 

우리가 기대하고, 헌법이 요구하는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법치의 출발은 민주적 입법과정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 국민의 의사가 무엇인지, 무엇이 국민을 위한 결정인지, 전체 국민의 대표로서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는 의원다운 의원이 있어야 한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개혁적 입법이라 할지라도, 충분한 논의 과정과 입법의 디테일 속에 국민의 모습이 담겨 있어야 한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절차와 방법에 따라, 우리 국회에도 정치가 살아 돌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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