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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상, 일상의 저편으로 밀어내기엔 너무나 많은 죽음이었고, 가장 참혹한 참척(慘慽)의 큰 슬픔이어서............
  • 편집국
  • 등록 2022-11-09 09:48:49
  • 수정 2022-11-09 09: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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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형대기자]


슬픔은 고양된 정신활동이다. 영원한 상실을 뜻하는 죽음은 각별한 슬픔이고 정신적 충격이다. 그래서 죽음을 애도하는 건 가장 인간적인 행동의 하나로 꼽인다. 그런데 과연 짐승도 슬퍼하는 마음이 있을까? 혜암 스님은 생전에 “공부하다 죽어라”라며 일갈하셨다지만, 원효대사는 사복(思服)의 어머니를 묻으면서,“태어나지 마세요, 죽는 게 괴로우니, 죽지마세요, 태어나는 게 괴로우니.” 라고 되뇌었다 한다. 죽음이란 그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나 그의 가족 모두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이러한 죽음은 살아남은 유족들에게 사회적, 신체적, 감정적, 인지적, 영적인 반응들을 초래 할 수 있다

 

너무나 많은 청춘들의 생명이 앗아져갔다. 한국적 풍류에 매혹돼 이태원을 찾은 외국인들도 있었다. 사망자는 156명이었다. 여기에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 했던 유명한 말을 빌리자면 “이태원 참사는 ‘156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156번 일어난 것’이다”라고 일갈하므로써 그 무게감을 헤아릴 길이 없다.

 

 한국이 세계 무대에 문화국가로 도약하는 시점에서 믿기지 않는 비극이 우리들을 강타한 것이었다. 이같은 실상에 대해 외신(워싱턴포스트)마저 “삼풍 참사 이후 27년 동안 한국은 아무것도 배운 게 없는지 의문”이라고 질타했다. 마땅히 예상되는 인파에 대한 대비가 없었고, 사고 발생 이후 대응 또한 총체적으로 부실했다. 권력자 중 누구도 먼저 ‘내 책임이다. 죄송하다’고 조아리는 이가 없었다. 대통령 등의 사과가 나온 것도 참사 며칠 후, 비판 여론이 들끓은 후였다. 희생자 아닌 사망자, 참사 아닌 사고란 용어를 고집하며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수십배의 더큰 상처를 안겨 줬다.

 

젊은이들이 놀러 갔다 생긴 일이든, 행사의 주최자가 있든 없든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일은 국가의 기본 책무다. 용산경찰서장은 관용차량을 고집하느라 걸어서 10분인 사고 현장에 50분 만에 도착했다. 대규모 인파에 따른 안전사고를 우려한 일선의 보고서는 무시됐고, 참사 후 삭제를 지시한 정황마저 드러났다. 

 

용산구청장은 7일 국회 행안위에서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면서도 “마음의 책임”이라고 토를 달았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같은 자리에서 “무한책임을 느낀다”고 했다가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으로부터 “장관은 구체적 책임을 지는 자리다. 무한책임이라는 추상적인 말로 면피하지 말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장관은 사퇴 의사는 없다고 했다.

 

여기에 온라인에는 가짜뉴스로 범벅이 되고 있고, 이때다 싶은 유튜버들은 확인되지도 않은 의혹들을 마구 퍼나르고 있고, 이태원 현장에 무슨 음모론이 있었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정치 공세의 호기로 여기는 민주당의 야권 스피커들은 미확인 가짜뉴스, 논리의 비약을 불사한다. 또 역발상으로 소수이긴 하지만, 윤석열정권 비판 세력이 이번 참사를 유도했다는 황당무계한 주장도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세월호참사의 비극을 겪고도 우리 사회의 공적 위기대응 시스템이 이 지경인 걸 다시 정쟁으로 몰아간다면, 그건 분열의 무한 프일 뿐이다. 진상을 규명하고, 합당한 법적·정치적 책임을 물으며,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일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인지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경기도 의왕시 오봉역에서는 지난 5일,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소속 30대 근로자가 화물열차 야간작업을 하다 사망했다. 


지난달 SPC 계열 제빵공장에서 20대 여성 근로자가 소스 배합기에 끼여 사망한 지 한 달도 안 돼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8월 산업재해로 숨진 근로자는 432명. 하루에 두 명꼴로 사망한 셈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있지만 코레일에서만도 올해 네 번째 산재 사망사고다. 이태원 참사 직후 누군가 ‘우리 젊은이들은 일터에서도, 놀러 가서도 죽는다’고 애달파하던 게 떠오른다. 설상가상으로 6일 서울 영등포역 인근에서는 무궁화호 열차 탈선사고까지 일어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북 봉화군 광산에서 매몰 221시간 만에 기적적으로 구조된 두 사람의 광부다. 커피믹스 30봉을 나눠 먹으며 버텼다. 달달한 커피믹스는 요즘 ‘K커피’로 해외에서도 인기라는데, 고된 작업장에서는 에너지를 회복하고 카페인 각성 효과로 노동집중도를 높이는 ‘노동음료’ 역할도 한다. 노동음료가 생명줄이 돼 준 상황. 구조된 광부 박정하씨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광부들에게는 없는 사람들끼리 끈끈한, 남다른 동료애가 있다”며 “동료들이 구조를 포기할 것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동료가 유일한 희망이었다는 얘기다. 박씨는 또 “사고가 나기 하루 전 안전점검에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며 겉핥기식 안전점검의 문제도 지적했다. 라디오 진행자는 그에게 “살아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는데, 동감이다. 일터에서든, 거리에서든, 놀이 공간에서든 더는 안타까운 죽음이 없는 안전한 세상은 언제일까. 이번에도 우리 사회가 배우지 못한다면 희망은 없다.

 

우리는 육친(肉親)을 잃은 것을 천붕지통(天崩之痛)이라고 한다. 이는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라는 뜻이다. 자식의 죽음은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이라 해 단장지애(斷腸之哀)라고 한다. 부모 주검은 산에 묻고 자식 주검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도 있다. 자식 잃은 아픔은 동물적 본능의 슬픔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슬픔을 참척(慘慽)이라고 하는데, 이는 자식 잃은 슬픔과 고통을 일컫는 말이다. 참척의 고통은 눈을 감을 때까지 부모 가슴에 납덩이로 얹혀 있고, 세월이 흘러도 딱지가 앉지 않는 상처다. 

 

아들과 딸을 잃은 부모들은, 이, 원통하고 분한 것을 누구에게 대들며 따져 물어야 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아. 내 사랑하는 딸들아. 이 세상에서 네가 없어졌다니 그게 정말이냐. 이 어미에게 죽음보다 무서운 벌을 주는 데 이용하려고 그 아이를 그토록 준수하고 사랑 깊은 아이로 점지하셨더란 말인가. 하나님이란 그럴 수도 있는 분인가”라고 통한에 몸부림을 칠수 박에 없는 현실에서 그렇게라도 따져 묻고 분풀이할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 비극한 현실.

 

 자식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부모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큼 참담한 일은 없다. 세월호 참사가 그랬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그랬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이태원 참사로 참척의 고통을 터져 나가는 가슴으로 삼키며 견디는 이가 수백명이 넘다. 참척을 당한 부모에게 조문은 아무리 조심스럽고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일지라도 견디기 힘든 모진 고문이다. 이제 늦은 밤 공용화장실 가기가 두렵고, 혼자 사는 게 무서운 세상이다. 우연히, 운 좋아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기본적인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는 요원한 걸까. 

 

최소한 수학여행 갔다가, 직장에서 일하다가, 공용화장실에 갔다가, 축제장에 갔다가 비명횡사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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