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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역사 반추에서 현재를 생각하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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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0-11-26 10: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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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4년 전 오늘 신소설의 기원, “이인직의 혈의 누”를 발표.
  • 문학에서 얻은 명성보다 친일파라는 오명으로 극명한 평가를 받고 있다

어제의 역사 반추에서 현재를 생각하다 3

 

94년 전 오늘 신소설의 기원, “이인직의 혈의 누”를 발표.

 

문학에서 얻은 명성보다 친일파라는 오명으로 극명한 평가를 받고 있다 

 

《혈의 누》(血-淚)는 소설가 이인직이 1906년 11월 26일에 발표한 장편 소설이다. 이 소설은 1906년 7월부터 10월까지 《만세보》에 연재됐던 작품으로 이 소설 이전에도 여러 가지 신소설이 있었으나 《혈의 누》가 문학적인 수준이나 가치로 보아 우리 문학사상 최초의 신소설로 평가된다. 상편은 《만세보》 연재로 끝나고 하편에 해당하는 《모란봉》은 1913년 2월부터 6월까지 63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연재되다가 미완성으로 끝났다.

 

 

 

이 작품은 청일 전쟁을 배경으로 하면서 10년 동안이란 시간의 경과 속에서 한국·일본·미국을 무대로, 여주인공 ‘옥련’의 기구한 운명에 얽힌 개화기의 시대상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 현실의 반영을 통해서 자주 독립·신교육·신결혼관 등의 주제 의식을 보이고 있다.

이 소설은 낙관적 개화주의를 갖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나 다른 한편 대중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어체 문장을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되고 있다. 또 상투적인 한문구를 배제한 것도 이 소설의 성과이다. 이처럼 쉬운 문장은 20세기 초 한국 문학에서 볼 수 있는 특징으로, 훗날 한국어로 쓴 현대소설을 태동시키는 초석이 됐다. 하지만 후편인 《모란봉》의 경우 의병을 무지한 폭력 집단으로 비하하였으며 《혈의 누》도 조선에서 전쟁(청일전쟁)을 도발한 일본에 대한 비판보다는 오히려 일본 군인은 고아를 돌보는 좋은 사람인 양 미화하는 등 친일성이 농후하다. 물론 이는 당시 아시아의 지식인들이 메이지 유신으로 발전한 일본에 대해서 유학생을 보내기 운동을 할 정도로 경탄하고 있었던 시대상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이를 시대상으로 보기에는 이인직의 의도에 대한 검증은 필요하다. 혈의 누는 단순히 순수문학으로 접근하기 어려우며, 이완용의 비서로서의 이인직을 생각할 때, 혈의 누는 일본제국주의의 선전국장 격으로서의 이인직의 조선인들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옥련이 미국에서 유학하여 지식인으로 성장한다는 설정도 당시 윤치호나 안창호 등의 지식인들이 ‘예수교를 믿는 나라들은 모두 부강한 나라’라면서 스스로 개신교 신자가 되는 등 서양을 대한제국의 발전모델로 생각하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혈의 누'라는 제목은 '피눈물'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한국 문법으로는 '혈루'가 옳은 말이며, '혈의 누'는 일본어의 문법을 적용한 것이다.

이인직(李人稙, 1862년 음력 7월 27일 ~ 1916년 11월 1일)은 일제 강점기의 언론인, 소설가이다. 경기도 이천 출신으로 호는 국초(菊初). 본관은 한산.

1900년 일본에 유학하여 도쿄 정치학교에서 약 3년간 수학했다. 1904년 러일 전쟁이 일어나자 일본 제국 육군의 통역으로 발탁되었다. 1906년에 《국민신보》와 《만세보》 주필을 거쳤다. 그해 소설 《혈의 누》를 썼고 1907년에 《대한신문》 사장이 되었다.

1908년 신극 운동을 벌이던 그는 국립극장 협률사를 인수하여 사설극장 원각사(圓覺社)로 바꾼 뒤, 《은세계》를 공연했다. 1910년 8월 4일에는 일본어를 하지 못했던 이완용 대신 일본에 가서 통감부 외사국장이던 고마쓰 미도리(小松綠)를 만나 한일합병을 교섭하기도 했다.[1] 이인직이 다리를 놓아 8월 16일 이완용과 조중응이 통감 관저를 방문하고, 8월 22일 병합 조약을 조인하였다.

경학원의 사성(司成)을 지내면서 한일 병탄을 뒷받침하는 논리를 유포한 《경학원잡지》 편찬을 담당하는 등, 유교 계열의 대표적인 친일 인물로 활동했다. 또한 다이쇼 천황이 즉위할 때 친일 헌송문을 지어 바쳤다. 1916년 11월 이인직이 죽자, 총독부는 병합 당시의 공로에 대한 상여금으로 450엔의 장례비를 교부하였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고, 2006년 12월 6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도 포함되어 있다.

 

 조대형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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