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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때 달라요, 강창일, 日 언론에 과거발언 해명…“대사 부임시 천황으로 불러야”
  • 편집국
  • 등록 2020-12-03 09:2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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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에 대한 사대주의가 아니라 상호 협력관계 모색하라

세상사 파발마 

 

그때 그때 달라요,

강창일日 언론에 과거발언 해명대사 부임시 천황으로 불러야

 

일본에 대한 사대주의가 아니라 상호 협력관계 모색하라 

 

   조대형 대기자 


최근 강창일 일본국 특명대사의 발언을 놓고 비굴하고 얇삽한, 간교하기마져 하다는 사대주의에 대한 염려가 깊어지고 있다. “도대체 대한민국 국민이 어떻게 해서 일본인들보다 더 심하게 자국의 역사를 폄하하고 우리나라와 역사 우리조상들을 그렇게 심하게 모독할 수 있는 것일까? 그들은 과연 한국인가? 아니면 일본인인가? 일본인이라고 하기에도 일본인들보다 그 이하인 그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라는 회자들이 현 문재인정권의 일본국에 대한 적대적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을 때 강창일의 발언은 그야말로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외치는 투사 이상의 이미지를 심어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신임 주 일본국 대한민국 대사관 특명전권대사로 내정된 강창일 전 의원이 일본 언론에 덴노(天皇)’와 러일 영토 분쟁 지역인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를 둘러싼 과거 발언을 해명했다. 2일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강 내정자는 전날 서울에서 요미우리 등 일본 언론과의 취재에 응했다. 그는 지난해 2월 문희상 당시 국회의장이 일왕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문 의장은) 천황(天皇·덴노)이 위안부를 위문했으면 한다는 취지였다고 언급한 데 대해 문 의장의 생각을 설명한 것 뿐이다. 일본에게 있어 천황의 존재, 역할에 대해 무지한 발언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지난해 10월 한 라디오에서 덴노와 관련 한국에서는 일왕이라고 말하자라고 발언한 데 대해서는 대사로서 부임하면 덴노라고 부르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한마디로 빠가야로다 


이같은 곡절은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새 주일대사에 강창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내정하면서 야기됐다. 좋다 문재인정권의 들쭉날쭉 한 정책이 어디 일본에 대한 정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별반 문제가 될 일은 아니겠지만,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강창일 대사가 혹여 문재인정권과 다른 시각의 사관을 갖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윤석열 감찰총장을 도려내듯이 언제 어느때 도려내는 대상이 되지는 않을까 심히 걱정스럽게 그지 없다. 사실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파탄 난 원인은 여러 가지지만, 일본군 위안부문제 합의 이행을 둘러싼 대립과 전시 노무동원 피해자(이른바 징용공’)에게 일본의 해당 기업이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 판결을 둘러싼 충돌이 결정적 요인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더디고 느슨한 대응에 잔뜩 화가 나서 마침내 핵심 부품 소재 등의 수출관리를 강화하는 조처를 취했다.


한국 정부는 이것을 경제보복으로 받아들여 격렬한 반일 자세로 응수했다. 국민도 서로 원색적인 비난 공방을 되풀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일관계는 원래부터 잘못 관리하면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유리그릇처럼 불안했다곧 사소한 부주의로 불똥이 튀면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가스탱크와 비슷했다.

다만 이번 경우는 위기관리 책임자인 양국의 수뇌가 오히려 대결을 부추겨 파열이 넓고 깊게 퍼질 수밖에 없었다양국 수뇌의 강경 자세는 지지 세력의 상당한 호응을 받고 있기 때문에 한일관계가 정상으로 복귀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듯 하다.


한국과 일본은 1965년 기본조약과 이에 관련된 부속협정을 체결함으로써 1910년 한국병합’(대한제국의 폐멸)으로 단절된 국교를 재개했다.

그 사이 35년 동안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그리고 일본의 패전과 한국의 해방 이후 20년 동안 두 나라는 정식 외교관계를 맺지 않았다반면에 두 나라는 미국과 각각 안보동맹을 맺음으로써 동아시아에서 반공 보루의 역할을 담당했다


한국과 일본은 해방과 패전 이후 70년 이상곧 근대 한일관계(1875~1945강화도사건부터 식민지 지배 종료까지 70)보다 더 긴 현대 한일관계를 공유하게 되었다.

또 1965년 국교재개 이후 어느덧 국교단절 기간(1910~65)보다 더 긴 세월이 흘렀다이런 시간을 함께 사는 동안 한국과 일본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공유하면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에서 아주 밀접한 관계를 형성했다


3자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과 일본처럼 인종이나 문화 등의 면에서 서로 닮아 있는 나라도 드물다웅장한 스케일로 세계문명의 흥망성쇠를 탐구한 미국 UCLA의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span style="font-family:함초롬바탕;">총··>에서 한국과 일본을 유년기를 함께 지낸 쌍둥이 형제와 같다고 규정했다.

한국과 일본이 세계사의 수준에서 보면 쌍둥이 형제와 같이 밀접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의 관계는 왜 이런걸까?


지난 30여년동안 한국과 일본의 역사대화를 이끌어온 나로서는 양국 국민은 어떤 선입관과 편향성을 가지고 한일관계를 보아오지 않았는가, 그 과정에서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틀린 것을 맞는 것처럼 확신하고 떠들어온 게 아닌가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한일관계는 우역곡절과 다사다난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면만을 도드라지게 보아서는 전체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현대 한일관계만 하더라도 세계사 속에서 장기적·거시적으로 파악해야만 원래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따라서 한일관계의 역사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재구성하여 양국 국민에게 제공하는 일이야말로 위기 상황에 빠진 작금의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데 꼭 필요한 작업이다

겉으로 보면 현대 한일관계는 반목과 대립으로 꽉 차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교류와 협력의 길을 걸어왔다. 한국과 일본에서 이에 대한 평가가 아주 인색하여 그 사실을 잘 모르고 있을 뿐이다.


한국과 일본은 한일조약을 체결해 일단 과거사를 정리하고 대등한 국가로서 국교를 재개했다. 한국은 청구권 자금과 연계해 일본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고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신흥공업국가의 선두로 부상하고, 외국으로부터 한강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받았다.반면에 경제에서는 일본과 수직적 분업관계에, 정치에서는 비대칭적 유착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이것을 뒷받침한 것이 한국에서는 개발독재·권위주의, 일본에서는 자민당 1당 우위의 정치체제였다. 한국과 일본이 대형 프로젝트를 함께 실행하다보면 어느새 미래가 과거를 정리해주는 상황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끝으로 앞에서 소개한 재래드 다이몬드가 쓴 <<span style="font-family:함초롬바탕;">일본인의 뿌리>라는 논문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 글 마무리하겠다.


역사는 한일 양 국민들에게 상호 불신과 증오의 여지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 때문에 그들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었는지를 증명하는 결론을 반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마치 아랍인과 유대인처럼 한국인과 일본인은 핏줄이 이어져 있지만, 서로 오랜 전통적인 상호 적대적 감정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하지만 그런 대립과 갈등은 상호간에 파괴적일 뿐 이로울 건 아무것도 없다. 분명히 한일 양국 국민들은 유년기를 함께 지낸 쌍둥이 형제와 같다. 이제 동아시아의 정치적 미래는 그들 사이의 오랜 유대를 성공적으로 재발견하는가에 따라 크게 좌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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