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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사면제안에, 딴지거는 김종인과 안철수
  • 편집국
  • 등록 2021-01-03 23: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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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인간들아. 차라리 찬성이나 반대를 하든지, 이게 좋다거나 저게 좋다고 말 좀 해라.

조대형 대기자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에 대해 두 가지 경우를 설명하고 있다. 하나는 좋은 종류의 참견으로서 성도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나쁜 종류의 참견으로서 성도는 하면 안 되는 일이다. 어떤 경우에 참견해야 하고 어떤 경우에 참견하지 말아야 할까?


우선 데살로니가전서 5장 14절은 어떤 경우에 남의 일에 참견해야 할지를 가르친다.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기독교인에게는 두 가지 종류의 죄가 있다. 하나는 작위적인 죄(sins of commission)이고 다른 하나는 부작위적인 죄 혹은 생략의 죄(sins of omission)이다.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을 때, 예를 들어 거짓말해서는 안 되는데 거짓말을 했다거나 물건을 훔치지 말아야 하는데 훔치면 우리는 작위적인 죄를 짓는 것이 된다. 


이 세상에서는 이런 작위적인 죄를 짓지만 않으면 결백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작위적인 죄 말고 다른 종류의 죄 즉 생략의 죄도 범하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인의 양심상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무슨 이유로든 그것을 하지 못했을 때 우리는 생략의 죄를 범한 것이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죄의 길에 빠지려 하는데 그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으면 생략의 죄를 짓는 것이 된다. 우리는 남의 일에 괜히 간섭해서 불편한 일을 당하기 싫다는 이유로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죄로 간주하신다는 것이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야고보서 4:17).


이낙연 대표의 '이명박근혜 사면론'이 새해 벽두부터 더불어민주당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전 징후조차 예견치 못했던 쓰나미급 초대형 사고에 당 안팎이 온통 아수라장이다.

이 대표의 폭탄발언에 발끈 펄쩍 뛰며 절대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의원들이 있는가 하면, 이 대표를 동조하는 의원들도 더러 보인다. 이런 가운데 이왕 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 없는 이 대표는 본격적인 설득작업에 들어가려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 대표 사면론의 동조 여부는 촛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존립기반이 붕괴됨은 물론, 여전히 미완성의 수구적폐 청산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고, 검찰과 사법개혁 또한 모두 올스톱되는 등 의원들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다는 점에서 반대 목소리가 압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면론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 들을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그만큼 전혀 설득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사면론에 미련을 가질수록 이 대표는 물론, 동조자 역시 함께 수렁을 향해 걸어가야 할 운명임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는 엄중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기자들이 사면론 관련 질문을 세 차례나 했는데도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만 밝혔다. 당 핵심 관계자는 “청와대가 사면을 발표한 것도 아니고, 사면을 건의했다는 것도 아니고, 우리한테 의견을 묻는 것도 아니라서 공식 대응을 안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사면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사면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필자는 이들 두 정치인 김종인, 안철수에게서 전형적인 우유부단함을 목격했다.

하긴 두 사람은 어느 한때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 그렇다해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다"는 말과 "중용"이란 말은 좋게 들리고 실제로 좋은 뜻이다. 그러나 "차지도 덥지도 않다"는 말은 좋게 들리지 않는다. 세 가지 말 모두가 극단적이지 않고 균형을 이룬 어떤 적정선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화자의 강조점에 따라 거의 반대의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진지한 얘기에는 반응하지 않고 말 없이 가만히 웃고 있다가, 중간중간 주제를 전개하기 위한 농담이나 예시에서만 남들보다 더 호들갑을 떨면서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그 대화가 논쟁이거나 찬반토론이다 하더라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절대 자기 의견을 먼저 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내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마치 다수결에 떠밀려서 마지못해 선택하는 것처럼 역시나 호들갑을 떨면서 막판에 의견을 낸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자신이 원하는 건 따로 있는데 마치 양보라고 하는 것처럼 희생이라도 하는 것처럼 큰 소리로 깔깔대면서 분위기를 희화화시킨다.


그들의 과장된 웃음은 위장이다. 마치 그 대화나 모임에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듯하나 실제론 오히려 방해가 되든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분위기가 그들에 의해 띄워지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으나 모임의 목적이나 결과까지 흐지부지되는 건 나로선 참을 수 없다.


의견을 물어보면 "아무거나"라든지, "상관없어" 식의 대답을 한다. 도대체 생각이나 있는건지, 뭣하러 모임에 나와 앉아 있는건지 의심까지 간다. 도대체 생각을 알 수가 없다. 마치 인생을 초월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초월이란 말은 그 딴데 사용하기엔 너무도 값어치 없게 느껴진다.


이 인간들아. 차라리 찬성이나 반대를 하든지, 이게 좋다거나 저게 좋다고 말 좀 해라. 그렇게 고상한 척,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다 받아들일 것처럼 위장하지 말고 말이다. 그리도 빠져나갈 탈출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단 말이냐!


웃긴 건, 그들은 팔짱 끼고 있다가 일이 예상처럼 잘 진행되지 않으면 꼭 한 마디씩 한다는 것이다. "내가 뭐랬어?" 라든지 "내가 이럴 줄 알았어"라고 불평을 해대며, 책임을 묻게 될 경우에는 자기는 그걸 동조한 적이 없다며 발뺌을 한다. 비겁한 초월자에다 비겁한 예언자다. 으, 이 역겨운 회색분자들!


그들의 행동 양식은 알고 보면 "책임 회피"라고 할 수 있다.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감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선호도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 주길 바란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그리고 표현하지 않았을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런 행동 패턴을 고수한다. 왠만해선 사람들이 자기를 콕 찍어서 왜 그랬냐고 따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고, 대부분은 그냥 의견 없음으로 묻어간다는 경험적 지식 또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두 사람 김종인과 안철수는,  어찌보면 거머리나 기생충과도 같다. 조직에 딱 붙어서 이로운 건 다 빨아먹으면서, 조직이 나빠지면 자신은 그 결과를 일으켰던 원인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며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난 이런 이들을 과감하게 "비겁하다"고 하고 싶다. 이런 비겁한 작자들과 함께 일한다는 건 정말정말 슬픈 일이다.


조대형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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