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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역사반추에서 현재를 생각하다.
  • 편집국
  • 등록 2021-01-13 00:5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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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8년 1월13일 진보 정치인 조봉암의 구속
  • 조봉암을 평생을 따라다닌 ‘공산주의자’란 물음표를 사후에도 끝내 뗄 수 없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봉암의 공판장면

조봉암을 비롯한 진보당의 전 간부가 북한 간첩과 내통하고 북한의 통일방안을 주장했다는 혐의로 1958년 1월 13일 구속 기소됐다. 1956년 5.15 선거에서 대통령후보로 출마한 조봉암이 비록 2위로 낙선은 했지만,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하자 이에 위협을 느낀 이승만과 자유당이 그를 제거하기 위해 사건을 조작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검찰은 진보당 간부들이 박정호 등 14명의 간첩단과 접선한 혐의가 있을 뿐 아니라, 진보당의 평화통일 주장이 북한의 주장과 같아 그들과 내통한 혐의가 짙다는 이유로 전간부를 검거, 송치했다. 조봉암은 1심은 간첩혐의 무죄로 징역 5년을 선고 받았으나, 2심과 1959년 2월 27일 대법원 확정판결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 대법원은 7월 30일 조봉암이 낸 재심을 기각하고, 다음 날인 7월 31일 사형을 집행하였다.


이 사건을 전기로 혁신정당의 활동이 크게 위축됐다. 조봉암은 일제시대 조선공산당을 주도한 핵심 인물이었으나, 전향해 대한민국 초대 농림부장관과 국회부의장을 역임했고 대통령선거에도 출마한 거물 정치인이었다.


그런데 2010년 10월 29일 조봉암 전 진보당 당수 유족들의 신청으로 대법원은 전원합의채를 통해 "피고인(조봉암)의 혐의는 군부대에 간첩으로 잠복하거나 군에서 간첩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므로 국방경비법의 적용 대상이 되지 않고, 군인이나 군속이 아닌 일반인은 육군 특무부대가 수사할 권한이 없다"고 밝히며 재심개시 결정을 내렸다. 11월 18일 대법원 대법정에서 재심이 열렸고, 그 이후 무죄판결했지만, 

북한 김일성 주석이 남한 대선에 개입했다고 실토한 구(舊)소련 외교문서가 발견됐다. 

1968년 9월 당시 조선노동당 총비서이자 내각 수상이었던 김일성이 북한을 방문한 드미트리 폴랸스키(1917~2001) 소련공산당 정치국원 겸 내각(각료회의) 부의장에게 1956년 남한 대선에 개입했다고 밝힌 문서다.


죽산 조봉암의 가족들(양복을 입은 사람이 조봉암이다.)

이 문서는 1956년 3대 대통령 선거 때 자유당 후보 이승만 대통령에 맞서 출마한 무소속 조봉암 후보가 북측에 조언을 요청했고, 이를 전달받은 북한이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소집해 진보당 설립과 조봉암 후보를 지원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김일성 발언이 기록된 구소련 외교문서의 해당 기록은 1968년 북한을 찾은 폴랸스키 소련 내각 부의장이 김일성에게 남한의 정세를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에 김일성은 “우리 당(조선노동당)의 남조선에 대한 노선은 혁명세력 준비 겸 사회민주화다. 

그러나 우리는 그쪽에 있는 우리 사람들에게 총선에 우리와 관계 있는 정당은 자기 후보자들을 출마시키지만 어떤 높은 직위를 얻도록 노력하지 말라고 했다. 

1958년에 우리는 이에 대한 안 좋은 경험이 있었다. 한 정당의 나쁜 영도 탓에 우리는 큰 상실을 받았다. 이 사건에 대해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겠다”는 말로 조봉암과 진보당에 관한 비화를 풀어놓는다.


기록의 요지는 북한이 남한에 ‘진보당’이란 소위 ‘합법 정당’의 설립을 지원했고 1956년 남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조봉암 후보 측에 자금을 지원하고 조언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1958년 소위 ‘진보당 사건’으로 진보당이 와해되고, 당수였던 조봉암이 이듬해인 1959년 처형되면서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 김일성이 폴랸스키 앞에서 털어놓은 회고다. 김일성은 “그(조봉암)는 우리에게 해당 임무를 달라고 했다. 우리는 (조선노동당) 정치국에서 이 편지를 토론했고, 다른 동지들을 통하여 그(조봉암)에게 연결체가 될 수 있는 합법 정당을 설립하자고 제안했다”고 폴랸스키에 밝히고 있다.


이 기록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조봉암이 북측에 대선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는 대목이다. 기록에 따르면, 김일성은 “조봉암은 이승만에 맞서 대선에 출마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조봉암)는 우리의 조언을 부탁했다. 우리는 그(조봉암)가 이승만 정권의 장관(농림부 장관)이라면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사유가 없다고 판단했고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소련 측에 털어놓았다. 김일성은 조봉암 측에 선거자금을 건넸다는 사실도 소련 측에 밝히고 있다. 

김일성은 “대선 한두 달 지나서 어쩌면 그 이전에 미국은 우리가 조봉암에게 선거운동을 위해 돈을 준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밝힌다. 다만 김일성은 자금의 구체적 액수는 소련 측에 밝히지 않았다.


이 문건을 살펴본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전 서울대 교수)은 “문건이 진본이라면 김일성의 발언이 조금 과장되거나 할 순 있어도 거짓말이라고 할 수는 없어 보인다”며 “조봉암과 진보당의 행적과 관련해서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 주범 김질락이 쓴 옥중수기 ‘어느 지식인의 죽음’과 북한에서 펴낸 ‘김일성 저작선집’에도 언급된다”고 말했다. 실제 ‘김일성 저작선집’(5권 480~481쪽)에는 진보당과 관련한 김일성의 언급이 등장한다.


“남조선 혁명가들의 줄기찬 투쟁의 결과로 그리고 남조선혁명운동 발전의 필연적 요구를 반영하여 1955년 12월에 남조선 혁명가들의 합법적 정당으로서 진보당이 나오게 되었다”라는 내용이다. 째르치즈스키 박사는 “해당 대목은 1970년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때 김일성의 연설로 노동신문 1970년 11월 3일자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재확인했다.


이영훈 교장은 기록에서 “이 당(진보당)의 당원은 1만명 이상이었다”고 김일성이 소련 측에 밝힌 숫자에도 주목했다. 이영훈 교장은 “조봉암이 옥중에서 북한 자금을 전달한 양명산(양이섭)에게 보내려다 발각된 비밀쪽지에도 ‘1만명’이란 언급이 등장하는데, 김일성이 밝힌 숫자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했다. 실제 조봉암 사형 판결의 결정적 증거가 된, 조봉암이 양명산에게 옥중에서 보낸 비밀쪽지에는 “당신(양명산)의 말 한마디가 나와 우리 진보당 ‘만여명’ 동지들의 정치적 생명에 관계가 되어 결사적으로 부인하시오”란 대목이 등장한다. 해당 비밀쪽지는 현재 국가기록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문서 발견으로 조봉암은 평생을 따라다닌 ‘공산주의자’란 물음표를 사후에도 끝내 뗄 수 없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일성은 조봉암이란 인물을 소련 측에 설명하면서 “진보당 당수(조봉암)는 국제공산당(코민테른) 시절에 모스크바에서 유학했고 공산주의적 세계관이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실제로 조봉암은 일본 유학 시절 전후로 사회주의에 심취해 ‘코민테른’이 운영한 공산당 간부양성기관인 모스크바의 ‘카우트브(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수학했다. 조선공산당 창당(1925) 등에 핵심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후 조봉암은 1946년 조선공산당(남로당의 전신)을 이끈 박헌영을 비판하는 공개서한을 보낸 뒤 강제 출당당한다. 박헌영과 조봉암은 조선일보에서 함께 기자로 근무한 사이다. 이후 조봉암은 이승만 대통령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참여해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농지개혁 기틀을 마련했다. 하지만 김일성은 기록에서 “이 동무(조봉암)는 배신자가 돼서 이승만에게 넘어간 것이 아니었다. 조봉암은 확고한 공산주의자로 남았다. 공산주의자로 남았던 조봉암은 이승만 편에 살아남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하기 위하여 넘어갔다는 편지를 우리에게 보냈다”고 소련 측에 밝혔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2011년 “이 사건 재심에서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 대부분이 무죄로 밝혀졌으므로 이제 뒤늦게나마 재심 판결로써 그 잘못을 바로잡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에서 조봉암에게 사형 판결을 내린 지 52년 만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조봉암 기일에 맞춰 3년 연속 화환을 보냈다.


조대형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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