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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역사반추에서 현재를 생각하다.
  • 편집국
  • 등록 2021-01-24 22: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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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4년 전 오늘…'마피아 전설인 시카고 밤의 대통령' 알 카포네 죽음
  • 성 발렌타인 데이 대학살' 등 각종 폭력과 살인사건을 배후에서 지휘


25일은 74년 전 전설의 마피아 보스 알 카포네가 사망한 날이다. 

화려했던 삶과 달리 그의 죽음은 초라했다. 1947년 1월 25일 매독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마이애미의 저택에서 쓸쓸이 죽었다. 1927년 무려 1억 달러가 넘는 소득을 올린 것으로 기록돼 있는 알 카포네. 금주법 시대 밀주, 매음, 도박 등을 통해 큰돈을 벌었던 그는 왜 20년 만에 그렇게 죽었을까.


알 카포네는 경쟁 갱단 조직원들에게 기관총을 난사한 '성 발렌타인데이 대학살' 등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스스로 자선사업가라고 여겼다. 대중적인 인기도 높았다. 막대한 돈으로 정치인과 경찰을 매수해 잡혀도 번번이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그런 알 카포네를 무너뜨린 것은 세금이었다. 그는 1931년 재무부 특별수사관 엘리엇 네스에 의해 탈세 혐의로 붙잡혔고 11년형과 8만 달러의 벌금을 받았었다. 세금 때문에 밤의 대통령으로 군림하던 알 카포네가 체포되자 1931년에만 전년의 두 배가 넘는 체납 세금이 걷혔다. 이 때문에 탈세에 대한 강력한 처벌에 놀란 이들이 자진 납세하는 것을 '알카포네 효과(Al Capone effect)'라고 부른다.


그는 매독 합병증으로 1939년 풀려나 재기를 노렸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1947년 매독 후유증으로 뇌출혈과 폐렴이 발병해 숨졌다. 74년전 오늘의 일이다. 


밀주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 알 카포네는 이탈리아계 마피아의 두목 자리를 차지했다. 1929년에는 '성 발렌타인 데이 대학살' 등 각종 폭력과 살인사건을 배후에서 지휘했고 급기야 1930년에는 시카고 트리뷴에 '공공의 적(Public enemy)' 명단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승승장구했다. 시카고의 정계 인사와 경찰을 매수해 정부 통제에서 벗어났고 1927년에는 1억달러가 넘는 소득을 올려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동시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헨리 포드 등과 함께 당시 시카고 젊은이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에 오르기도 했다.


영화 대부가 그의 전력들에 대한 하나의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주연 배우 알파치노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반대쪽 폭력조직과 생사를 건 투쟁을 한다. 

심지어 형까지 죽인다. 19세게 후반부터 미국으로 밀려온 이탈리아 이민자들중 일부는 밑바닥 생활을 하다가 폭력조직을 일궈 단숨에 주류사회로 진입한다. 1920년 금주령을 틈타 밀주장사로 큰 돈을 벌었다. 그러나 그 밀주사업의 지역관할권을 놓고 폭력조직간 암투는 끊이지 않았다.


마피아 알 카포네의 무적 방탄 자동차

미국의 전설적인 갱 두목 알카포네(1899~1947)도 당시 막대한 재산을 모아 키네스북에 이름을 올릴 정도였다. 그가 살았던 시카고 남부의 114년 된 집이 매물로 나와 화제다. 14일(현지시간) 시카고 언론에 따르면 시카고대학 남서쪽 파크 매너 지구에 위치한 이 집은 1905년 지어졌으며, 알카포네가 스물네살이던 1923년 8월 부인 메이와 어머니 테레사가 공동명의로 매입해 함께 살았다.

부동산 정보업체 '질로'(Zillow)는 "이 집에서 1924년 알카포네의 남동생 프랭크의 장례식이 치러졌고, 1952년 어머니 테레사가 세상을 떠났다"며 "시카고 역사의 한 부분"임을 강조했다. 연면적 262㎡ 규모에 침실 6개, 욕실 2개를 갖춘 이 집의 매매 희망가는 10만9천900달러(약 1억2천500만 원). 중개업체 측은 두 가구가 동시에 거주할 수 있도록 고안됐고, 원목 마루가 깔려 있으며, 각 층에 팔각형 거실이 있다고 전했다.


부동산업체 리맥스(Re/Max)의 중개업자 라이언 스미스는 애초 차고에서 집 안 지하실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가 있었으나 그 공간은 메워져 없어졌고 부엌은 1950년대 상태로 추정되고 알카포네의 어머니 테레사가 살던 때 그대로일 수 있다고 전했다.


거래 기록을 보면 2009년 4월 45만 달러(약 5억 원)에 매물로 나왔으나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아 가격이 갈수록 떨어졌다. 경제전문매체 시카고 비즈니스는 이 집의 가장 최근 소유자가 부동산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이 압류됐다고 전했다.


1899년 뉴욕 빈민가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알카포네는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범죄조직에 가담했으며 만 19세에 결혼해 외아들을 낳았다.


알 카포네는 일반 대중들에게 미국 최고의 마피아 두목으로 인식되지만 실제 마피아 조직에 몸담다가 은퇴하여 인터뷰를 하는 인물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카포네는 미국 마피아 두목 중에서 제일 유명했던 사람"으로 인정하는 정도다. 물론 그런 증언을 하는 현대 마피아들도 하나같이 공통으로 인정하는 사실은 "자신 시대 마피아 중 어느 누구도 카포네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라고 말한다.


알 카포네 저택

즉, 알 카포네가 동시대 마피아 세계의 진짜 실권자였던 뉴욕의 러키 루치아노보다 더 유명한 이유는 행위의 잔혹함과 과시욕, 자신을 언론에 많이 노출시켜 일반 대중들이 그의 이름을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 크다. 카포네와 같은 이유로 존 고티 역시 동시대 마피아 세계의 최고 실권자였던 빈센트 지간테보다 일반 대중들에게 더 유명하다.


뉴욕 브루클린 태생이며, 나폴리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뉴욕에서 '파이브 포인츠'라는 갱단에 소속되었다.

파이브 포인츠 갱단에 있을 때 일 대 일 주먹다짐에서 져 본 적이 없다고 한다. 특히 주먹에 붕대를 감고 접착제를 바른 후 유리 조각을 붙여 상대의 턱을 날려버린 일화로 유명하다. 이 시절 나이트클럽에서 프랭크 갈루초라는 인물에게 얼굴을 칼로 베이는데, 이 사건은 스카페이스란 별명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1919년 자신의 후견인 자니 토리오(Johnny "The Fox" Torrio, 1882.02 ~ 1957.04.16)를 따라 시카고로 간다. 시칠리아 출신들이 설치는 뉴욕에서 자신 같은 나폴리 출신은 명함도 못 내밀어서라는데, 이는 금주법 시기와 맞물려 행운이 된다. 이때 알 카포네가 몸담게 되는 조직이 시카고 아웃핏이다.

알 카포네가 소유하고 있던 방탄차는 그가 체포될 때 재무부가 압류했다. 대통령 관용차 가격 상한을 넘는 고가의 차량이라 그대로 보관만 하고 있었는데,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자 당시 대통령 경호를 하던 재무부에서 전시 대통령 암살 방지를 위해 보관중이던 방탄 차량을 꺼내 쓴다. 그 말을 차 안에서 들은 루스벨트 대통령 왈- "카포네 씨도 이해해 주겠지.".....


조대형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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