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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봉 석종현논단 대통령 사면권한, 노골적 봐주기로 비춰진 까닭
  • 편집국
  • 등록 2021-12-26 20:5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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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럼에도 박근혜 사면론의 일면은 시의적절


천봉 석종현논단 


대통령 사면권한, 노골적 봐주기로 비춰진 까닭   

그럼에도 박근혜 사면론의 일면은 시의적절 



독일 법철학자 구스타프 라트부르흐는 “사면(赦免)은 기적(奇跡)이어야 한다”고 했다. 

애초 사면권이 억울한 사람 구제하자는 것이니 감동을 주되 예외적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감동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무슨 때만 되면 하는 습관적인 것, 거래나 정치의 수단쯤으로 여길 뿐이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최악을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줬다. 트럼프의 임기 막판 사면은 가히 폭주에 가까웠다. 작년 11월 대선 이후에만 세 번에 걸쳐 측근, 전직 공화당 의원, 그리고 사돈까지 사면했다. 트럼프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의 부친 찰스 쿠슈너는 자신의 탈세 수사에 협조한 매제(妹弟)를 매춘부로 하여금 모텔방으로 유혹한 뒤 성관계 장면을 촬영해 협박한 파렴치범이다. 한국에서 그런 사람 사면했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4년 뒤 대선을 노리는 트럼프에게 사면은 정치일 뿐이다. 그가 사면한 전직 공화당 의원들은 그의 대선 출마를 가장 먼저 지지해줬던 이들이다. 지지층을 위한 노골적인 봐주기 사면, 보은(報恩) 사면이었다. 이전 미 대통령들도 임기 막판 악성 사면을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한 공화당 의원은 “(트럼프의 사면은) 속속들이 썩은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어떤가. 군사정권 이후 최악 사면은 2007년 12월 말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막판 사면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측근은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 측 인사를 대거 사면했다. 노 대통령 당선에 공을 세운 ‘병풍(兵風) 사건’의 주역 김대업씨를 사면하려다 법무부의 거센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다. 가장 노골적인 사면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분명 그때보다 절제하고 있다. 하지만 사면 정치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취임 후 네 차례 사면에서 정권 지지 세력이라 할 수 있는 세월호 시위, 제주 해군 기지와 사드 반대 폭력 시위 관련자들을 빼놓지 않았다.


사면은 어떤 형태든 법 질서를 해치는 것이다. 그걸 그나마 상쇄할 수 있는 게 명분이다. 하지만 이번 전직 대통령 사면론은 정치적 계산만 하느라 명분을 잃었다. 또 설령 사면한다고 해도 이젠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하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복권을 두고 반발 여론이 여전한 가운데 이재명 대선 후보는 26일 “후폭풍 갈등 요소를 문재인 대통령이 혼자 짊어지겠다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제게도 ‘탈당한다. 그러나 이재명은 지지한다’고 하는 문자가 몇 개 온다”며 “박 전 대통령이 건강이 안 좋다는 얘기가 있는데 정말 마지막 순간에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는 게 맞을지 고뇌를 저 같아도 많이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후보는 문 대통령의 결단을 존중하면서도 지지층 반발 등을 우려해 선 긋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이 후보는 이날 KBS에 나와 ‘사전에 전혀 몰랐느냐’는 질문에 “전혀 몰랐다”며 “예민한 상황이었다. 제가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 않았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일반적인 얘기는 하는데 박 전 대통령 관련 얘기는 한 적이 없었다”며 “발표 전날에도 (박 전 대통령이 사면 대상에) 빠졌다는 뉴스를 봤기 때문에 생각도 못했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박 전 대통령 사면이 미칠 정치적 유·불리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현상이라는 건 위기·기회 요인이 혼재하는데 이 문제가 유리할지, 불리하게 작동할지는 판단이 안 선다”며 “판단하면 뭐하겠나 이미 벌어진 일이다. 저는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후회하거나 되돌리려고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사면권’에 대한 견해도 나타냈다. 이 후보는 “고도의 정무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상황은 변하는 것이고 국민들의 의지도 변하기 때문에 상황이 바뀔 경우에도 과거의 원칙이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면 더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 점 때문에 사면권이라는 게 있다”고 했다. 이어 문 대통령의 박 전 대통령 특별사면이 ‘5대 중대범죄 사면권 최소화’라는 공약을 스스로 저버린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선 “그 약속을 형식적으로 보면 어긴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부정부패(에 대해 사면을) 안 하기로 했던 거 아니겠나”라면서도 “국가 미래, 통합에 필요하면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바람과 기대는 각기 달랐겠지만, 문재인 정부의 신뢰가 떨어진 데엔 촛불 광장에서 표출된 요구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다는 실망감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요구의 하나가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일 것이다.  사면론 역시 이 지점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 여기엔 진보 인사들의 ‘내로남불’을 격하게 비난하는 보수진영의 이율배반과, 선거에서 이겼다고 아전인수로 민심을 해석하는 국민의힘의 오판이 함께 녹아 있다. 야당 본색은 보수정당 혁신이 여전히 멀고 먼 과제임을 일깨울 뿐이다.

날카로운 공정의 잣대에도 관용은 필요하고, 공익을 위한 용서는 정의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이명박·박근혜·이재용의 사면과 이걸 주장하는 이들의 사적 이익이 무관하다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19세기 미국 공화주의자들이 걱정했던 대로, 제왕적 사면권의 무절제한 행사를 버젓이 요구하는 퇴행을 21세기에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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