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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이 물었다, “이 국가의 불행이 언제 끝나냐?”..고 그러나 위정자들은 답하지 못했다.
  • 편집국
  • 등록 2022-01-05 07: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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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당 이재명의 문재인에 대한 역린, 이재명으로의 대통령 당선도 정권교체다. 억지 주장


국민들이 물었다, “이 국가의 불행이 언제 끝나냐?”..고 

그러나  위정자들은 답하지 못했다.


민주당 이재명의 문재인에 대한 역린, 

이재명으로의 대통령 당선도 정권교체다. 억지 주장


                                                조대형대기자

이제 모든 것은 투표로 시작하고 투료로 끝이 난다. 투표만 남았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온 새끼들은 온통 저만 잘났다고 주절대는데, 정작 국가와 국민을 위해선 뭘 한다는지도 모른채 선거기일 67일을 남겨놓고 있다.  참정권의 행사는 하나의 결단이다. 결단을 내릴바엔 분명히, 그리고 선명한 의사를 표시해야 할 것이다. 가든 부든...투표를 포기하는 것처럼 소극적인 태도는 없다. 민주시민의 유일한 보람은 자유의사에 의해서 결단하고, 그 결과를 투표지에 표시하는 것이다. 표수의 집계는 여론이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고상한 질서이며 사회적·도덕적인 기준을 의미한다. 국민의 권리도 무엇도 아닌 것이다. 

정치를 외면하므로써 치루게 될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기 때문인데, 저질 저질 난 이번 선거판처럼 저질스런 정치인들은 보다 보다 처음 본다. 적어도 1963년부터 행사되어진 정치역사를 네이버에 검색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자산으로 갖고 있기에 이들 대통령후보들을 재단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지만, 도대체가 국민들의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하다니...... 세상에,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변명으로 일관하기 바쁘다. 그러나 우리를 선택하든 투표행위를 해야만 한다.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 억울해서 말이다. 

플라톤의 이 말은 사실 소수 엘리트들을 대상으로 쓰인 말이다. 플라톤의 《국가》 1권 347p를 참조해 말하자면, 소수 엘리트들은 돈과 명예를 탐한다는 오명을 쓰기 싫어 정치를 꺼리는데, 그랬다가는 엘리트가 아닌 미개한 군중들이 정치를 맡아 중우정치로 흐르게 되므로 엘리트들은 어쩔 수 없이 정치에 손을 대야 한다는 맥락에서 나왔다. 한마디로 문맥을 무시한 인용인데, 문구의 뜻이 워낙에 중의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보니 플라톤의 의도와 반대로 민주주의의 의의 강조와, 투표 독려의 격언으로 자주 쓰이는 중이다.

무엇보다 플라톤은 엘리트주의자지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플라톤의 이상적인 국가는 통치에 적합하고 본질적으로 우월한 소수의 통치 계급, 곧 '수호자(guardian)'를 상정하고 이들만이 정치 권력을 잡아 다른 모든 (열등한) 이들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즉 이 격언은 "본질적으로 우월한 소수의 잠재적 수호자들이 통치를 포기하면 저질의 다수 대중에게 지배받는다"는 뜻으로, 아예 뿌리부터 반민주적인 의미를 내포한 금언이다. 게다가 플라톤은 처음부터 국민을 우매(愚昧)한 대상으로 상정했기에, 국민 대다수가 엘리트인 경우를 설명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또한 브이 포 벤데타에서도 이러한 말이 나온다. 지금 이 순간, 내 입을 막으려고 누군가 전화통에 고함을 질러대고 곧 총 든 사람들이 오겠죠. 왜일까요? 정부가 대화 대신 곤봉을 휘둘러도 언어의 강력한 힘이 의미 전달을 넘어서 들으려 하는 자에게 진실을 전해서죠.

그 진실이란 이 나라가 단단히 잘못됐단 것이다.잔학함, 부정, 편협함, 탄압이 만연하고 한땐 자유로운 비판과 사고, 의사 표현이 가능했지만 이젠 온갖 감시 속에 침묵을 강요당한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가? 누구 잘못인가? 물론,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고 대가를 치르겠지만,이 지경이 되도록 방관한 건 바로 국민들이다.

여기서 필자는 감히 역린을 말한다. 제대로 된 놈이 없다는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민주당은 대통령후보부터 교체하고 덤비라. 그의 부정함과 비상식, 불공정함으로 감히 대척하려 들지 말라. 때문에 진정으로 이 나라를 위기라고 판단했거나, 살려야 한다면 그의 역린을 건들여서라도 죽이라. 역린은 본지 용의 몸에 붙어 있는 81개 비늘들 중 딱 하나, 목 아래에 거꾸로 붙어 있다고 하는 비늘을 말하는 것이고,  이 비늘을 건드리면 용이 날뛴다고 하는 일종의 급소다. 지금부터 이재명의 역린을 찾으라. 그리고 국민의 물음에 답하게 만들라!

특히 국민들은 저항하라! 저항과 시위정치가 붉게 물든 자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 사찰공화국. 대장동 게이트에 전부를 걸어라> 이걸 빼면 적이 없는 것과 같다. 


적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삶이 위태로운 사람들은 자신의 불안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적 즉, 혐오의 대상을 필요로 한다. 


한국의 보수정치 문화에도 시민운동과 저항의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잘못된 권력에 국민들이 맞서 싸우지 않았다면 지금 세상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우리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우리의 신념과 자유를 짓밟을까 두려워하지만, 시민들의 저항이 거세지면 그들 역시 두 다리 뻗고 잠을 청할 수 없다. 그것은 아주 간단한 정치의 법칙 때문이다. 즉 제 아무리 강한 권력자라도 형식적으로는 국민의 ‘동의’를 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도 어느 순간이 되면 ‘국민’ 또는 ‘시민’을 내세워 자신을 정당화시켜야 한다.


그러니 우리는 질문을 던지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시민들은 왜 저항하는가?”라는 물음은 정치의 본질을 건드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시민들이 언제나 권력의 부조리에 맞서 자유나 평등, 정의와 같은 큰 뜻을 실현하기 위해 저항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민들은 어떻게 저항하는가?”라는 물음 역시 핵심을 건드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시민들은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엄청난 권력에 저항해왔기 때문이다. 지나친 권력이 있는 곳엔 언제나 시민의 저항이 있었다. 권력의 비리와 억압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시민들은 저항했다. 저항하지 대장동 게이트와 사찰에 대하여..... 그리고 답하게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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