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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봉 석종현논단/ 문재인정부의 무능한 정치가 관료집단의 특권 세력화를 조장해왔다
  • 편집국
  • 등록 2022-03-10 06: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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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주가 넋이 빠지거나, 권력 행사를 할 수 없을 때 간신이 기회를 잡는다.

새로운 정권의 시대가 왔다. '위드 코로나'와 함께 '위드 폴리틱스' 등의 녹아난 것에 저마다 입장과 생각은 다르지만, 문재인정권의 뒤를 잇는 새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우리들 각자와 나라 전체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 운명의 역사는 집권자인 대통령을 에워 싼 인물들이 어떠냐에 따라 달라진다.

문재인이 조선 인조 이래 최악의 무능한 대통령으로 단죄 진전에 있는 것도 주변 막료들을 잘못 썼기 때문이다. 우리가 과거 왕조 시대에 정치를 잘하기 위한 지침으로 손꼽히는 게 이런 변간(辨奸)이었다. 간신이란 짐짓 충신인 양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원칙과 제도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사유화하며, 국가의 기반 자체를 흔드는 원흉이다. 따라서 '그런 간신을 일찌감치 찾아내 싹을 잘라 버려야 한다! 잘못해서 충신을 제쳐두고 간신을 뽑아 버리면 두고두고 손해가 크다!'는 것이다. 그렇게 변간의 중요성이 누누이 강조되었음에도, 시대마다 간신은 등장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기본적으로 간신이란 전제군주 제도의 산물이다. 먼저 모든 권력을 한 손에 틀어쥐고 있는 군주가 무슨 일로 넋이 빠지거나,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없을 때 간신이 기회를 잡는다. 

 

조선 중기의 윤원형은 왕이 어리고 대비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상황을 이용했다. 문정왕후가 사실상의 왕이고 자신은 그의 동생이라는 점 하나만으로 부패와 사치의 끝을 보여주었다. 그에게 청탁하려고 찾아온 사람들이 가져온 뇌물이 차고 넘쳐 저택 앞에 시장을 열었으며, 윤원형 개인에게 바칠 뇌물을 지방에서 싣고 오는 배가 정기적으로 운항했다. 결국 그가 1501년 문정왕후의 죽음과 함께 몰락하자, 훈척 정치에 질려 버린 조선은 사대부들이 국정을 좌우하는 나라로 바뀌어갔다. 그 정착 과정에서 당쟁이 일어났고, 왜란과 호란이 찾아왔다.

 

한편 군주가 자신의 권력을 되찾거나 강화하기 위해 간신을 이용하기도 한다. 고려 말, 공민왕은 아무 배경도 연줄도 없는 신돈을 '이세독립지인(離世獨立之人·세상을 떠나 초연한 사람)'이라며 발탁해서 그에게 나라를 뒤흔들 권력을 주었다. 1365년, '영도첨의사사(領都僉議使司)'를 비롯해서 겸직, 겸직, 겸직으로 신돈에게 붙은 직책명은 총 50글자가 넘었다. 그리고 신돈을 앞세워 권문세족들이 겸병하고 있던 토지와 노비를 빼앗아 그 세력을 억눌렀다. 귀족 자제들이 독점했던 관료기구도 새롭게 고쳤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개혁에 대한 반발이 부글부글 끓어오르자, 신돈이 사치와 음란에 빠졌다 하여 모든 지위를 뺏고 유배 보냈다가 끝내 죽였다. 신돈의 뒤에 숨어서 왕권을 강화하고, 그 때문에 날아온 화살은 신돈이 온통 맞도록 한 셈이다. 조선 후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776년 정조는 '죄인의 아들'이라는 멍에를 쓴 채 왕위에 올랐다. 노회한 노론 대신들로 조정이 채워져 있기도 했다. 이토록 불리한 상황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자, 그는 오랜 심복 내지는 친구였던 홍국영을 내세운다. 도승지와 약방제조를 맡겨 밤낮으로 임금을 대해 볼 수 있도록 하고, 훈련대장이며 숙위대장, 중영대장 등도 맡겨 사실상 병권의 대부분을 한 손에 쥐도록 했다. 거기다 비변사, 선혜청, 홍문관 등 거의 모든 행정기관의 실무도 겸직하게 함으로써, 정승이 아니면서 정승을 한참 뛰어넘는 권력을 갖도록 한 것이다. 정조는 홍국영을 통해 대궐 안팎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훤히 알 수 있었고, 그에 맞게 대책을 세우고 지시를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맞서거나 맞선다는 의심이 가던 세력들을 하나씩 제거했다. 그렇지만 나는 새도 떨어트릴 지경이던 홍국영의 권세는 3년 남짓이었다. 

하지만 군주가 필요에 따라 '만든 간신' 역시 군권을 농단한 간신이나 마찬가지로 정치와 역사에 피해를 입혔다. 신돈이나 홍국영이 벌인 일의 뒷배가 누구인지는 뻔한 일이고, 그토록 신임하던 사람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모습을 보며 충성심이 생길 까닭이 없었다. 공민왕은 말년을 혼란스럽게 보내다 암살되며, 이후 우왕, 창왕의 정통성마저 '신돈의 핏줄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게 되면서 고려는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 정조의 탕평정치 역시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그가 비교적 일찍 죽고 난 뒤의 조선은 세도정치 시대라는 조선 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대로 진입한다. 왕의 힘이 제대로 쓰이지 못할 때, 간신은 등장한다. 그렇다면 왕이 사라진 지금은 간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꼭 그렇지는 않다. 군주 대신 국민이 주권자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주권자 국민이 매우 강력한 통치권을 위임하는 대통령은 왕권을 대신하는 강력한 신하에 비길 만하다. 그렇다면 그런 대통령도 국민에 대하여 '충신'일 수 있고, '간신'일 수도 있다.

과거의 간신들이 군주의 태만이나 무능을 이용해 등장했듯, 주권자 국민이 자신들을 대신해 나라를 이끌어갈 사람을 신중하게 뽑지 않고 얄팍한 감성이나 이미지에 휘둘리면 '간신 대통령'이 등장할 수 있다. 

주권자 국민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저쪽이 되는 것보다는 낫다' '거대한 악의 세력에 상대하려면 이런 인간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던진 표가 간신 대통령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어떻게 현대에도 정치의 그림자에 숨어 있는 간신의 망령을 없애버릴 것인가. 윤석열 정권이 성공하려면 권력주변이 깨끗해야 한다. .

문재인정권처럼 국민이 대통령에게 공적으로 행사하라고 준 권력을 도용해 사익을 채우면 안된다. 구체적으로 "아키텍트들이 프로그래밍을 짜면 일부 어용 언론인, 일부 어용지식인들(그 중에는 아예 대놓고 ‘나는 어용’이라고 자랑하는 이도 있습니다)이 나서서 바람을 잡는다. 

 

무능한 정치가 관료집단의 특권 세력화를 조장해왔다. 이것이 우리 사회 관료 문제의 핵심이다. 결국 이 관료조직을 어떻게 통제하고 관리해 ‘관료지배의 사회구조’를 바꿔낼 수 있는가에 윤석열정부의 성패가 달려 있다. 독점적이고 폐쇄적인 지금의 ‘공직 시스템’을 반드시 바꿔야 한다. 프랑스처럼 고위 공직을 정무직으로 전환하거나 독일처럼 정치적 임용에 의한 정당 소속화 방식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도 변할 수 있다. 차기 정부가 관료지배 체제의 대개혁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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