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정치악평의 ‘개소리’에 대한 반박으로서의 개소리.......
  • 편집국
  • 등록 2023-01-25 11:02:34

기사수정

[조대형대기자]

 

우리 정치권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개소리가 너무도 만연하다는 사실이다. 모든 이가 이것을 알고 있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개소리를 하고 다니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런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개소리를 알아차리고 거기에 현혹되지 않을 정도의 지각은 갖추고 있다고 꽤 자만하고 있다. 그래서 개소리와 관련된 현상은 진지한 검토의 대상으로 부각되지 않았고, 지속적인 탐구의 주제가 되지도 않았다. 그 결과 우리는 개소리란 도대체 무엇인지, 왜 그토록 개소리가 많은지, 또는 개소리가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 등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한국 정치를 전일적으로 장악한 ‘진영논리’와 그것에 기댄 ‘정치의 팬덤화’ 현상이 끼친 치명적 폐해들 중 하나는, 윤석열 정권을 통해 공정하고 정의로운 민주사회의 구현을 이룰 수 있다는 일반 시민들의 기대와 희망, 감동이 정치에 대한 환멸과 절망, 무관심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점이다. 흔히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말처럼, 공정과 상식의 사회를 대변한다고 자임했던 윤석열 정부 또한 개혁적 보수 정권이라는 ‘자기 지칭적 표현’에도 불구하고, 한갓 또 다른 권위주의적 기득권 세력으로 전락해 가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역할의 모호성도 윤석열정부의 전체주의적 휘발성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 양상이고, 특정후보의 당권출마 배제를 위한 일련의 겁박정치 등의 평가는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대체로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로 굳어지는 듯하다. 

 

가령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 부위원장 사표를 파면과 유사한 해임이라는 강수를 통해 드러난 전근대적이며 반민주적인 ‘의리 정치’의 민낯을 비롯하여, 윤핵관의 말 한마디에 일사분란하게 전체가 하나가 되어 작동되었던 집권 여당의 ‘유사 전체주의적’ 당 운영 방식이나,북한의 공격에 대해 본때를 보여 주겠다는 의지는 공수표가 된지 오래고, 신중치 못한 외교적 발언 등 생각나는 대로 열거하기에도 넘쳐나는, ‘민주주의 침탈적 난맥상’이 고스란히 이를 대변해 준다. ‘이념적 좌우’를 떠나 국민이 위임한 통치 권력을 기득권 강화와 사적 이익의 관철을 위해 남용하려는 특정 정치세력으로 하여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러한 반민주적 정치 공학적 행태를 자행하게끔 허용하는 빌미와 무대가 활짝 펼쳐지게 되었다. 

 

이와 함께 정치적 정통성과 정당성이 결여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 정진석위원장은 ‘대통령실 하수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도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 점에서, 대통령 권력의 ‘보위적 완장 맨’으로 나섰던 윤핵관들에 대해서는 감히 언급조차 하고 싶지 않다. 다만, 필자의 이 글이 보수적 지식인들 중에도 합리적이며 균형적 감각을 지닌 자기 성찰적 지식인이 적지 않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으로 오인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이렇듯 지난 윤석열인 정권 하에서 적지 않은 수의 정치인들은, 민주당 이재명의 안녕과 정치탄압의 사정이라는 이유를 빙자하여 당권유지 및 보신안전의 확충을 획책하는 데 자신들의 권한을 남용하는 진보 집단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앞장 서 주도적으로 그러한 민주주의의 파괴적 사태를 초래하는 ‘주된’ 정치 공학적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온 것이 현재의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다. 여기에 더하여 국회의원의 막중한 자리를 내던지고 대구광역시장으로 태세전환을 한 홍준표 대구시장 겸 ‘정치악평가’가 국민의힘 유력 당권주자인 나경원 전 의원을 비판하고 나서는 등의 악동 발언은, 자신의 대권행보에 걸림돌이 되는 인사를 무참하게 묻어 버리겠다는 음흉한 야욕이 자리하고 있다. 

 

홍준표 정치악평가는 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수양버들 리더십보다는 목표를 세우면 좌고우면(결정을 빨리 못하고 망설임)하지 않는 굳건한 리더십으로 나라를 이끄는 정치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이는 전당대회 출마여부를 두고 한 달 넘게 고민 중인 나 전 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홍준표 정치악평가는 또 지난 9일 나 전 의원을 겨냥해 "친이(친이명박계)에 붙었다가 잔박(잔류한 친박계)에 붙었다가 이제는 또 친윤(친윤석열계)에 붙으려고 하는 걸 보니 참 딱하다"며 "여기저기 시류에 따라 흔들리는 수양버들로 국민들을 더 현혹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는 정치권의 비전과 창안의 집단이 아니라, 비아냥의 집단일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대한민국 정치에 감동을 느끼지 못할까? 바로 우리나라 좌파, 우파 정치인들이 진보와 보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실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보수의 경우 자유와 민주를 내걸었지만, 사실은 업악과 탄압의 비상식적 민주정치를 획책하고 있고, 진보 또한 평화와 복지를 말하면서도 친종북 세력으로 전락된지 오래다. 따라서 보수와 진보는 근대의 개념일 뿐,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서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나와야 한다. 

 

현재의 정치진영들은 상대를 악마화 하는데 익숙해 있다. 이른바 상대 정적 죽이기에 골몰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지경에 있다.

물론 정치인 개인을 평가하는 것에 있어서는, 개인이라는 존재가 가진 표상(에토스)과 그의 행위(로고스)의 관계로 이어지지만 실존적 존재인 개인과 달리 이데올로기는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성'을 가지고 인간에 의해 매개되어 존재하는 관념이기 때문에 그 운동에 있어서 인간 개인과는 다른 양태를 보인다. 

 

여기에서 나사렛의 예수를 거론하는 것은 특이한 사례인데, 로고스적으로 옳지만 에토스적으로 옳은지 틀린 지는 판정하게 힘든 경우여서 옮겨보면 이렇다. 요한복음 1장에서 '로고스' 그 자체라고 선언되는 예수는, 당시 로마제국의 피지배 식민지인 이스라엘에서 적어도 정치사회적인 상황에 한정해서 보자면 '에토스'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는 존재이다. 


갑작스레 나타나 유대 율법을 '완성'이란 이름으로 폐지시키고, 로마제국에 맞서 저항할 것을 주장한 열심당원의 주장을 물리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고(마태복음 5장 3절)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보다 어렵고(마태복음 19장 24절) 심판받지 않으려면 남을 심판하지 말아야 하며(마태복음 7장 1절)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고(마태복음 19장 19절) 내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어주어야 하며(마태복음 5장 40절) 완전하고 싶다면 자신의 소유를 모두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마태복음 19장 20절)고 한다.


지독하게도 바보처럼 '로고스'적으로 옳은 주장을 펴다가 가야바 등의 제사장의 고발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는데, 죄목은 유대의 왕을 사칭하며 나라를 뒤엎고자 한 내란선동죄이다. 재밌는 것은 예수가 죽은 뒤부터다. 로마제국의 압제를 맞서 폭력적으로 저항한 열심당은 유대 독립전쟁을 일으켰고 로마에 처참하게 패배한 후 유대인들은 자기 땅을 잃고 세계 곳곳으로 2천 년간 디아스포라를 시작하게 됐다. 반대로 예수의 종교는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어 서양 정신문명의 두 토대 중 하나를 히브리 철학으로 영원히 수놓아 졌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광고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포토뉴스더보기
확대이미지 영역
  •  기사 이미지 [알림]총선승리를 위한 애국단체연합대회
  •  기사 이미지 어멋! 이건 빨리 가야햇!!!! 선착순이래!!
  •  기사 이미지 송파(갑) 국회위원 석동현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 이모저모
문화체육관광부
정책공감
최신뉴스더보기
우이신설문화예술철도
인기 콘텐츠더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