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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길박사에 대한 弔辭(조사), 우리는 저 마다의 속도로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 편집국
  • 등록 2022-10-05 1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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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꽃처럼 살다간 김동길박사의 생의 한가운데서

 

[조대형대기자]


필자는 고등학교 때 귀납법과 연역법을 배웠다. 그런데 반드시 암기해야 할 그 법칙들의 예가 하필이면 죽음이었다. ‘예수도,소크라테스도 죽었고. 공자도 죽었다. 나의 할아버지, 아버지도 죽었음이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인데, 이를 우리는 귀납법이라고 통칭한다.이를 또 달리 표현하여 말하면, 즉 ‘모든 사람은 죽는다. 고로 예수, 소크라테스도 죽었고, 공자도, 나의 할아버지, 아버지도 죽었다’로 이어지는 언어 표현은 연역법이다. 그 때문인지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과 실재로 닥칠 죽음에 대한 찰나의 걱정을 피할 수 없다. 그때마다 내리는 결론은 ‘죽으면 죽는 것이다. 잘 사는 것 못지않게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제 보수 지성인의 대표로 꼽히는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사진)가 4일 오후 10시 50분경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호흡기 질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고인은 “시신을 의과대학에 기증하라”란 유언을 남겼다고 유족들이 전했다.

1928년 10월 평남 맹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연희대(현 연세대) 영문학과를 다녔고, 미국 보스턴대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연세대 사학과 교수를 지내며 잡지 ‘씨알의 소리’ 등에 박정희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쓰며 민주화 운동에 나섰다. 1947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기소돼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나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서울 강남갑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인의 길을 걷기도 했다. 신민당과 자민련 등에서 정치 활동을 하다가 1996년 정계를 은퇴했다. 그 후 고인은 수많은 강연을 진행하고 언론 기고를 남겼다. 콧수염과 나비넥타이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2019년 유튜브 채널 ‘김동길TV’를 개설해 약 30만 명의 구독자를 모았다. 올해 초 안철수 대통령 후보 후원회장을 맡으면서 야권 단일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유족은 여동생 김옥영 씨 등이 있다.

 

인간의 죽음은 살아남은 이들에게 깊은 슬픔을 남긴다. 기자가 어린 시절이던 1963년, 나의 할어버지가 죽어 꽃상여에 실려 장지로 떠난 날이 기억된다. 먼 거리는 아니었다. 5K 정도 님짓한 선산에 묻는 것이었다. 화려한 꽃으로 단장한 상여 앞에는 선소리꾼이 먼저 창하고 상여꾼들이 후렴을 부르면서 간다. 추운 겨울이었다. 뒷산 가기 전 얕은 개울을 건너야 할 때, 망자의 가족인 우리들은 상여를 더듬으며 곡했다. 그 때 그 떠남에 대한 슬픔과 애도는 비가(悲歌)가 된다. 그 떠남 안에는 육체의 이별이지만 망자와의 기억은 그대로 남는다. 그를 추모하기 위해 인간은 제사를 지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하나의 세계만으로 구성돼 있을까. 혹 이 삶 이후의 어떤 삶 또한 존재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 생의 끝이 다른 생의 시작이 되고 이 생의 시작이 다른 생의 끝이었던 것은 아닐까. 이 세계에 변하지 않은 하나의 진실이 있다면 모든 이는 떠난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떠난 것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아닐까. 죽음이 유희가 되고 축제가 되는 것은 망자의 죽음이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으로 연결될 거라는 걸 믿는 이들의 소망 아니었을까. 죽는다는 것, 그것도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은 인간의 정신에 상처를 남기지만, 나에게 학자 김동길을 촌철살인의 풍자를 남겨 주었다. 

 

 

이런 개같은 인간이 대통령 후보? / 김동길 박사가 포효한 풍자의 글이다 

 

내 나이 90이 넘도록 참 선거도 많이 해봤지만, 이런선거 첨 본다. 세상에 자기 마누라 두고 애로 영화배우가 "나하고 1년반 동안 불륜하고 마약범이라고 뒤집어 쒸웠다"는 상대가 대통령 후보 1순위로 올라 오는것 여태까지 한번도 못봣다!이 여배우가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스스로 "내가 저 대선후보와 1년 반이나 살았었다"고 남들은 숨길려는데도 실토까지 하는걸 보노라면 저후보가 불륜녀한테 얼마나 잔인하게 햇길래 저럴까 싶다.아니 불륜 말만 나와도 남 보기 민망해서 숨어사는데 와~ 대통령 되겟다고... 대단하다. 대단해...아무리 형이 밉고...형수가 미워도 그래도 죽은형도 형이다. 형수다. 녹취록에 "이  C8 Yoen A 가 뭐냐...?" 이런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다면 머리가 어질어질 한다... {중략}

 

이런사람 상대로 대통령선거 하는 이나라가 정상인가...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다면 천륜을 무시한 이나라가 벼락이라도 맞지나 안을까 걱정이다...  어디서 박정희 닮은 이를 수소문할 것이며, 서민의 영원한 지폐 1달러의 상징인 조지 워싱턴을 수입해 올 것인가. 생각 할수록 참담하고 답이 없어 답답합니다.아~ 무심한 하나님이시여~재발 이 나라 이 국민을 살펴 주시옵소서~!

 

국내의 대표적 사학자이자 종교인으로, 그는 신랄한 정치·사회 비판으로 명성을 얻었다. 방송에서 비평을 할 때마다 후렴구처럼 읊조리던 ‘이게 뭡니까?’라는 말은, 당대 최고의 유행어이자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정도였다.

 

그는, 1991년 자신의 정당(새한당)을 만들어 정치에 뛰어들었다. 쉽지 않았을 결단이었고 예사롭지 않은 정치에 참여였다. 김동길박사는 국회의원 시절 항상 낮은 자세로 국민들을 대했다. 국회의원들은 국회의사당 들어갈 때마다 중앙문을 통해 들어가고 참관인인 국민들은 중앙문이 아닌 옆문을 통해 들어간다. 하지만 김 교수는 국회의원 시절 국회의사당 들어갈 때 마다 국민들이 들어가는 중앙문이 아닌 국민들과 함께 옆문으로 들어갔었다는 말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여인의 남편은 아니었으되, 한 여인의 애인, 만인에게 동경된 대학교수라는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표면적으로는 평범하고 상식적인 생활을 영위한 사람이지만 정작 본인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꿈과 이상에 늘 쫓겨 방황했다. 그러한 단면은 그가 동생들과 주변 친구들에게 보냈던 숱한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김동길박사가 쏟아내는 말들 속에는 유독 '권태'와 '광기'라는 두 낱말이 자주 등장했다. 김동길박사가 가고 없어진 이 땅의 어느 한곳에 남겨져 있을 살롱, 다방 등에 자주 드나들며 언론사의 기자들,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단골 아지트는 그의 해방구처럼 비쳐졌지만, 그 안에서도 그에게선 남다른 고독이 묻어나곤 했다. 학자 김동길박사의 죽음에서 그의 모든 것뿐만 아니라 우리시대 학자들의 초상을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그의 삶과 죽음... 그래, 삶이 없으면 죽음도 없고, 죽음이 없으면 삶도 없다. 또한 삶과 죽음은 있는 것 같지만 없고, 없는 같지만 분명히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短句(단구)의 글에서 김동길의 삶과 죽음 속에서 "슬프도록 아름답고 안타까운 그의 죽음에 대한 조사를 읆퍼 댐으로서 그에 대한 부의에 가름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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