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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와 여자의 쓸모가 밤에 만 있는게 아니듯, 나의 고향 사릉도 나에겐.........
  • 편집국
  • 등록 2022-11-27 23: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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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형 대기자]


 

‘사릉역(思陵驛)’. 비운의 왕 단종(端宗)의 정비인 정순왕후 송씨(定順王后 宋氏, 1440-1521)의 능(陵)이 역의 이름이 됐다. 그러나 사실은 역의 이름이 사릉인 것이지, 그 부쳐진 이름과는 달리 사릉은 오히려 금곡역과 더 가깝다는 점이고, ‘된봉’을 넘어야만 사릉이 나타난다는 말이 더 그럴 듯하고, 한 줄의 시와 같는 것일 터이지만. 이 말은 시가 아니라 사실이다.

 

지금도 사릉엘 가다 보면 ‘참, 여기가 나의 고향이였지’ 하고 새삼 느낄 때가 많다. 그것은 주로 두 가지 흔적 때문이다. 하나는 내 조상들과 핏줄, 또 하나는 정겨운 벗들. 이 두 낱말에서는 온기가 묻어나진 않지만, 이 말이 실재하는 사릉에는 대개 기막힌 풍광이 펼쳐진다. 조상들의 얼과 핏줄의, 나의 뿌리와 억제되어 왔던 거친 욕망의 이미지가 연상되어서인지 때로는 이미 그곳을 떠난 이의 감성을 극한까지 몰고 갈 때가 있다.

 

난 그곳을 갈때마다 ‘샘말’에서 시작되는 추억들을 더듬기도 하고, 이내 나의 행보가 빠른 것인 탓이기도 하겠지만, ‘안말’을 들어서게 되고, 못내 아쉬움이 잦아 드는 것은 ‘뒷모퉁이’ 까진 마음의 자락을 펼치는게 무언가에 의해 방해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사릉의 ‘샘말’을 들어설 때에 한국의 근대문학 초기 대표 소설가인 춘원 이광수(1892년- 1950년 10월 25일)의 글 밭인 적도 있으니 자연스레 문학기행이 되었다.

 

사릉의 주변은 한산했다. 메마른 목장과 들판들도 있었건만 온데 간데 없다. 

어쩌다 등이 푸른 나무가 보이면 여지없이 작은 그늘 아래 술잔을 기울이는 친구들의 모습이 보이곤 했지만, 그것 마져도 흉년인게 틀림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정오의 태양빛은 사릉 마을을 눈부시게 했다. 몇 사람 정도의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선 그나마 황금빛이 너울거라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나의 고향 사랑 터전 밑 끝자락에 금맥들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끔씩 발걸음을 멈추고, 나의 고향 사릉의 대지가 뿜는 기운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다시 침묵처럼 먼 길을 보았다.

 

나와 동행한 몇몇 사람들은 길 위에 걸린 맑은 하늘과 구름의 조화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우리는 한동안 자연의 일부가 되어 그 곳을 향휴했다. 멀리 보이는 산자락 끝 ‘된봉’을 쳐다 보면 사람이 산다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후미진 곳이 되어 버렸다. 

 

걸어 다닐 때 마다 어떤 조짐이 있었는데 그것은 산등성이었다. 산등성에 이어 이정표가 나타나고,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 보면, 그곳에 또 옛 마을의 흔적이 있었다.

조금 지루한 길이 이어질 즈음, 멀리 얕은 산등성이에 제법 넓은 아파트단지들이 어른거렸다. 나는 아파트가 보이니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맛진 곳이 나타날 것이라고 일행들에게 읊조리듯 말을 뱉어냈다.

사람이 운집해 있을 아파트 단지가 보이면 그곳에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고, 물이 있으면 거기에 사람이 살 수 있다는 사실. 그게 뭐 대단한 발견일까만, 나의 사릉으로의 행보가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해 시작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미치고서야 내 고향 사릉을 떠난 것이 엊그제가 아닌, 아주 오래 전의 일이라는 사실을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발품을 더 팔아 옮겨 온 오남리 저수지는 머지 가까이에, 나의 초록 마음이 깃든 곳에 위치한 자연 호수였다. 산등성이를 따라 내리막길 끝에 자리한 호수는 그릇에 담긴 물처럼 고요하고 반듯했다.호수 한 가운데 조각 같은 것들이 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미끄덩한 나무들이었다. 꼿꼿이 서 있는 폼 새로 보아 뿌리를 물 속 아래에 깊이 박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적어도 호수의 역사 보다는 더 긴 수령을 가졌을 것임에 틀림 없었다. 잠긴 물 자락에서 흐르지 않고 버틴 세월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얼마를 더 버틸 수 있을까. 회색빛 뼈처럼 되어 물속에 서 있는 나무들이 어쩐지 아슬아슬해 보였다. 

 

나에게도 고향은 이제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고향을 빼앗긴 사람이나 고향을 두고 온 사람이나 안타깝기는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제는 아득히 먼 곳이 된 내 고향이어서인지 내겐 수몰된 땅처럼 여겨진다. 타관의 생활에 익숙해 진 나로서는 물 속 고향에 발을 내린 채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서있는 오남리 호수의 벌거벗은 나무인지 모른다. 물속 깊은 땅에 남아있는 고향을 빨아들이고 뿌리에 박힌 비늘을 털갈이 하면서 오늘의 생명을 지키고 있는 나무.

 

그날 하루 해가 막 서녁 산에 걸쳐 있을 때 나는 다시 그곳에 섰다. 노을빛을 반사하는 수면 위로 헐벗은 나무들이 기묘한 행세를 드러냈다. 나뭇가지마다 까만 솜뭉치 같은 것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자세히 보니 저녁이 되어 자리를 찾아온 까마귀 떼였다. 마치 회색 뼈에 검은 꽃송이가 맺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그 느낌을 툭 뱉자 나와 동행한 사람들은 이 표현 또한 한마디 시라고 했다.

 

어둠이 호수 주변의 형체들을 밀어낼 때까지 우리는 그 곳에 서있었다. 나무에 붙어있는 까마귀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물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나뭇가지를 쉼터라고 찾아든 새들의 귀환이 하도 장엄해 나도 모르게 이건 시가 맞아, 라고 중얼거리면서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고향을 두고 왔다고 내 마음까지 잃어버릴 수는 없다. 희망이 무엇인지는 몰라.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좋아. 어둠이 초록을 덮고, 내 그림자마저 삼켜 버리면 그때부터 마음 속 내 고향은 달빛에 입을 벌려 지저귀기 시작 해. 그 것이 내 삶을 노래하는 시가 되는 거야. 오남리 저수지 주변 자락의 벌거벗은 나무처럼.

 

침대와 여자의 쓸모가 밤에 만 있는게 아니듯, 나의 고향 사릉도 나에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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