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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것은 한번 짚고 넘어가자. 역사로서의 성탄절의 기원과 신화적 가설로서의 성탄절
  • 편집국
  • 등록 2022-12-24 12:3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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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사렛 예수가 역사적 인물이라는 진실, 신화적 허위의 거짓이라는 주장만 팽배

조대형대기자 


기독교인들에게는 지극히 불경(不敬)스러운 이야기이겠지만, 오늘 이 성탄절 전야의 주인공인 예수의 실존(實存)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기독교에 대한 막연한 부정을 말하려는게 아니라, 무신론자이지만,성경에 대한 공부를 했거나, 그렇지 아니 하더라도 객관의 시각을 가진 기독교인이라면 성탄절이 예수가 진짜 태어난 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예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가 있지만, 몇 월 며칠에 태어났는지는 말해주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이 예수가 태어난 날로 기념하는 성탄절은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이교도 신앙을 적용-변화한 이교도의 명절일 것이라는 추론들을 내놓고 있다. 

 

 이집트의 오시리스,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페르시아의 미트라스, 시리아의 아도니스, 히타이트의 아티스……. 이들은 모두 신의 아들이자 육화된 신이었으며, 12월 25일에 탄생했고, 성스러운 자로부터 세례를 받았고, 결혼식에 물을 포도주로 바꾸고, 병자를 고치며, 귀신을 내쫓고,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는 등의 기적을 일으켰다. 이들은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 혹은 나무에 매달려 죽었으며, 사흘 만에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가 최후의 심판일에 재림할 것을 약속했다. 또한 그들의 신자들은 빵과 포도주, 즉 신인의 찢겨진 육신과 피를 먹음으로써, 그의 죽음과 부활을 기리는 의식을 했다는 것에 비유하면, 예수의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위와 같은 동일한 이야기의 또 다른 변형일 뿐이라는 것을 외면하기 어렵지만, 중요한 것은 왜 오시리스나 디오니소스의 이야기는 문자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지 않으면서 유대인을 배경으로 한 똑같은 사건은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가 하는 문제이다. 

 

심지어 성탄절의 그 유래가 이교도의 풍습과 닿아있다는 점은 성탄의 의미에 대한 회의론까지 일으킬 수 있다.사람들이 성탄절을 그저 즐거운 명절로 보내더라도, 크리스천들은 진정한 성탄의 의미에 대해 알고 기념해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해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종종 비판거리가 되는 성탄의 유래에 얽힌 진실은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이를 가장 확실하게 알려줄 수 있는 성경에는 예수의 탄생이 언제인지 나와있지 않지만, 대개의 종교학자들은 예수가 태어났다고 하는 시기에 목동들이 들에서 양을 치고 있었다는 등의 기록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한겨울은 아니었을 것이라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 12월 25일을 성탄절로 했을까? 이같은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찾아 본 문헌에 의하면, 성탄절이 12월 25일로 된 가장 널리 알려지게 된 이유는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배경에는 기독교 공인 이전 로마에 퍼져있던 미트라교의 영향이 있다.고대 근동의 종교였던 미트라교는 조로아스터교와 합쳐지게 된다.

 

이후 페르시아 제국의 확장에 따라 로마 헬레니즘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이전에도 로마에는 태양신 숭배사상이 있었고, 12월 24일부터 이듬해 1월 6일까지 농경의 신을 섬기는 축제가 있었다. 이러한 설들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크리스마스의 어원을 살펴보면, 크리스마스(Chrismas)는 라틴어 ‘크리스투스’ (Christus)와 미사(Missa)가 합해진 것이라고 나타나고 있지만, 12월 25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이 맞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결론부터 말하면 “알 수 없다” 혹은 “알 길이 없다”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자료가 불충분하기 때문일 것이지만, 여러 가지 자료들이 초대교회교인들이 성탄절을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로 여기고 축하했다고 기록하고는 있지만 그 기원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이같은 분분한 의견들을 집역하면, 2세기 후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여 12월 25일이 아닌 1월 6일이나 10일, 4월 19일이나 20일, 5월 20일, 11월 18일에 축하했다는 이야기가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들은 2세기 후반까지 다양한 날에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했다는 추론이 가능해 진다. 즉 처음부터 12월 25일로 확정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참고로 성탄절이 12월 25일이라는 가장 오래된 역사적 기록으로서는 로마 교회의 감독 다마수스의 친구이며 필사 전문가인 필로칼루스가 편찬한 연대기(354년)가 있다. 336년 로마교회의 순교자 명부에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이 12월 25일로 나온 것을 기초로 하여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에 잘 알려진 대로 동방교회는 1월 6일이 주현절이자 성탄절로 지키고 있습다. 때문에 성탄절의 기원은 상당히 모호하다. 

 

그렇다고 12월 25일이 예수의 탄생일이라는 정확한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성탄절의 의미를 결코 퇴색시켜선 안될 것이지만, 12월25일이 예수탄생일로 변형된 것에 대해 종교개혁 이후 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은 적극 반대해 왔고, 그 대표적인 예가 청교들이다. 

 

이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건너간 후, 미국 청교도들도 동일한 기준을 택했다. 1659년 메사추세츠 주에서는 공식적으로 성탄절을 금지했다. 이러던 것이 1836년 앨라배마 주에서부터 다시 성탄절을 공휴일로 정하기 시작해 남북전쟁이후에는 미국 전지역으로 확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오늘날의 성탄절은 그리스도의 의미는 없어지고 상업문화만 팽배하다는 것이 그것이다.

 

때문에 성경의 말씀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미사를 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경배를 할 뿐이다(요4:23~24).

이것을 뒷받침 하는 것은 장로교회의 창시자 칼빈이다.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의 미사는 주의 만찬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말살하는 모독적인 행위로 그런 행위는 곧 미신이며 우상숭배이다."라고 지적 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크리스마스'라는 용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많은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이 크리스마스의 기원과 유래, 그리고 그것의 비성경적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그냥 교회의 가장 중요한 행사로 지키고 있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초대 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죽은 날은 기념하였지만, 탄생을 기념하지는 않았다(고전11:26) 대영백과사전」도 "크리스마스는 초기 교회의 축제들 중에는 없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카톨릭 백과사전」(1911년판)도 "크리스마스는 교회의 가장 초기에 있었던 초기 축제일에 들어 있었던 축제가 아니라... 그 축제의 기원은 이집트이다... 이레니우스와 터둘리안은 축제일 목록에서 크리스마스를 삭제하고 있다." 라고 적시하고 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 믿지 않는 자들의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연중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이 술 마시고 음행하며 더 많이 흥청거리는 날이 되어가고 있다. 

이는 성탄절이라고 명명하여 휴일로 지정된 데 따른 여파이기도 하겠지만, 사람들의 마름 끝자락에 이미 성탄절이 예수가 탄생한 날이 아니라는 기원을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의 탄생일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날에 성서에 반한 음행이 이루어져 결국엔 산부인과와 콘돔 판매만 급증하고 있는 데에는 이같은 근거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12월 25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아니라는 여러 증거들을 보면, 

 누가복음 2:8에서 천사가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그분의 탄생을 알려주었던 때에, 목자들이 넓은 들판에서 밤까지 양떼들에게 풀을 먹였다고 한 기록에서 보듯, 이들은 밤에 들에 묵으면서 양떼들을 지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겨울은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상당히 추우며 비가 오는 계절로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12월25일 에 목자들이 들판에서 자신들의 양떼들을 먹이고 지키는 것은 그들의 관습이 아닐 뿐 아니라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에스라10:9-13을 보면,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모았을 때인 아홉째 달 이십일 경(유다 월력-우리 월력으로는 11월 중순경 이후임)에 비로 인해 떨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위 사실에 근거하여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늦어도 10월말 또는 11월초 이전임을 알 수 있다.

 

한때 필자가 미션스쿨에서 기독교 성경에 심취한 것을 반추해 보면, 그리스도의 탄생일에 대한 명확한 성경적인 근거는 없지만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묘사하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요1:14)라고 쓰고 있다. "거하시니" 라는 말은 영어로는 "dwelt"이고 그리스어로는 "tabernacled"로서, 이 "tabernacl"이라는 단어는 바로 장막절을 나타내는 것임을 간파해 볼 때, 예수는 장막절에 출생하였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말에 대해 기독교인들은 필자를 사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예수께서 마지막 때에 대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너희는 피난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24:20) 이 말은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이에 대해 그건 어디까지나 말일 뿐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여러가지 문서로서의 증거들도 있다.

 

12월 25일이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아니라는 것은 성경 이외의 다른 여러 문서들에서도 증명하는 것은 우선 아가페 성경사전이다. 

 

 아가페 성경사전(1991)은 "그 날짜는 분명히 황제 아우렐리우스의 생일을 기념하는 로마인들의 축제(Natalis Solis Invicti, '정복되지 않는 태양의 탄생')에 맞서서 선택되었다."라고 말하며, 카톨릭 백과사전(1991)도 "크리스마스는 교회의 가장 초기에 있었던 축제가 아니라...그 축제의 기원은 이집트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1620년대 미국의 청교도들은 크리스마스에 선물이나 인사를 주고받거나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차려 먹는 행위를 사탄의 관습으로 간주하여 그러한 행위를 금지하였고, 그것을 위반할 경우에는 5실링의 벌금을 물도록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날이 태양신을 기념하는 축제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620년 미국에 건너온 청교도 이민에 관한 기록을 보면 메사추세츠 법원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사람들을 형사법으로 처벌하는 것까지 공포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볼 때 크리스마스는 인간이 만든 전통이며, 오히려 사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12월 25일이라는 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 날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그 특별한 탄생의 의미를 기리는 것뿐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진정으로 기념하고 싶다면 정확한 날을 알고 기념해야 하지 않겠는가? 살아 계신 부모님의 생신 상을 차려 드리면서 제 날짜도 아닌 날에 요란을 떤다면 좀 우습지 않겠는가?

 

우리는 역사적으로 탄생일을 강조하는 것은 죽은 종교에서나 있는 일이라는 사실에 유념해 볼 필요가 있다. 공자, 맹자, 석가모니, 마호메트, 소크라테스, 마르크스, 레닌은 모두 유교, 불교, 회교, 인본주의, 공산주의 등 인간적인 발상으로 종교와 이념을 만들었지만, 태어난 날만을 자랑할 뿐,지금도 무덤에 묻혀서 그 가르침은 그들의 죽음과 함께 힘을 상실하고 말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에 있는 것이지만 결론하여 말하면 예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는데 방점을 두어야 한다.

 

예수 이야기는 어느 한날 문자주의자들이 우둔한 자들을 지배하기 위해 설파하면서 역사적 사실로 둔갑하기 시작했다는게 필자의 주장이다. 

 

문화적으로 낙후한 고대 로마제국 서부 지역에서 시작된 문자주의자들은 예수 신화를 문자 그대로의 진실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리스도교를 유일한 계시 종교로 만들었다. 종교 개혁 이후 성서가 가톨릭교회의 독점에서 벗어나자 개신교 학자들이 예수의 역사적 증거를 찾기 위해 분투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처참했다. 역사적 예수의 증거는 없거나 매우 희박했다.

 

3세기 동안의 집중적인 연구 결과, 예수의 역사적 기초가 세워지기는커녕 문자주의의 예수상(像)은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다. 즉 사도들의 얘기는 서로 앞뒤가 맞지 않았고, 심지어 바울의 편지들과 사도행전 등 여러 글들이 후대에 위조된 ‘가짜’였던 것이다. 그리고 위조의 과정에서 성경 내 복음서 순서를 고의로 치밀하게 뒤바꾸기까지 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그래서 오늘날 신약 성서는 실제 집필 순서와는 정반대로 편집되어 있다. 만약 신약 성서를 쓰여진 순서대로 다시 본다면 영지주의 예수가 먼저이고 역사적 예수는 나중에 가공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결론하여 말하면 지배자의 종교가 된 그리스도교는 이교도 신앙을 대대적으로 말살했다. 4세기경 이교도에 대한 테러와 고문이 횡행하였고 무수한 이교도 신전이 파괴되었으며, 수많은 저술들의 대규모로 소각되었다. 그리스도교판 문화혁명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교는 자신의 뿌리에 대한 증거를 말살함으로써 유일한 진리의 종교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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